엥? 고속도로 갓길에서 열을 식힌다고?
이제 마음을 놓고 두어 시간쯤 가다 보면 닿겠지 하고 생각하고, 한 이십 분쯤 갔을까? 기사 아저씨가 안내방송을 하는데, 이게 뭔 말이래요?
"손님 여러분께 알립니다. 이 차가 고장이 났나 봅니다. 아까 당진에서 올 때도 다른 차에 손님을 옮겼는데, 또다시 말썽이네요. 그런데 이게 또 막차라서 다른 차를 바꿔 탈 수도 없으니까 죄송하지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도 희한하게 느리게 가는 거예요. 버스가 가는 모양을 보니, 마치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빨리 갈 때 나는 속도와 맞먹어요. 이럴 수가! 게다가 막차라서 다른 차에 옮겨 타지도 못한다니, 이걸 어쩐대?버스 안에는 우리와 친구사이로 보이는 청년 둘, 이렇게 네 사람밖에 없었어요. 차가 고장 나서 그렇다는데 이런저런 말도 못하고 그저 밤 12시 안에만 닿기를 바랐어요.
"어휴∼ 오늘 왜 이러지? 집에서 나올 때부터 일이 자꾸만 꼬이네.""할 수 없지. 그래도 어쩌겠어. 가다가 아무 사고만 없기를 바랄 수밖에…."
우리도 답답하지만 기사 아저씨도 무척 속이 탈 거란 생각에 그냥 꾹 참았어요. 안내방송이 끝나고 한 십 분쯤 더 달렸나? 애고, 이건 또 무슨 일이래요? 천천히 갔지만 그런대로 잘 가던 버스가 느닷없이 고속도로 갓길에 비켜서 세우는 거예요. 이러다가 오늘 밤에 당진에도 못 가고 차 안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거 아냐? 하며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잠깐 멈춰 서서 버스 열을 좀 식힌 다음에 가야겠습니다."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차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가 고장이 나서 30∼40km로 천천히 가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이젠 그나마 가다가 말고 갓길에 세워두고 열을 식힌다니! 휴가 첫머리부터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데 매우 황당했습니다. 그렇다고 차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요. 막차라서 옮겨 타지도 못한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얼마 동안 있다가 열을 다 식혔는지 버스가 다시 떠납니다. 열을 식힌 탓인지 그나마 아까보다는 훨씬 더 빨리 달려요.
"휴우∼ 다행이다. 그래도 아까보다 빨리 가니까 조금 늦더라도 닿을 수 있겠다."
버스가 제대로 달리는 걸 보고 나서 서산 언니한테 전화를 했어요. 깜짝 놀라게 하여주려고 미리 얘기도 안 하고 가는 건데, 늦은 시간에 가서 '짠!' 하고 나타날 수도 없고, 또 서산까지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언니가 차를 타고 나와야만 했기 때문에 얘기를 해야 했답니다.
"엥? 지금 서산에 오고 있단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몹시 놀라는 눈치예요. 사정 이야기를 하고 밤 11시 30분쯤 차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니, 이런! 또 일이 꼬이네요.
"애고, 미리 전화를 하고 오지. 내 차가 지금 서울에 가 있단 말이야.""어이쿠! 오늘 일이 엎친 데 덮친 꼴이네!""가만 있어봐, 어쨌거나 내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라도 차를 알아볼 테니까 걱정 말고 내려와. 그나저나 배고프겠다."
전화 한 통 없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우리를 반겨주는 언니가 퍽 고마웠어요. 더구나 이 늦은 시간에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라도 차를 끌고 당진까지 나오겠다고 하니….버스는 보통 때 달리는 빠르기로 잘 가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시간에 닿을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렇게 난생처음으로 충남 당진 땅에 닿으니, 밤 11시 30분. 언니는 버스터미널에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곁에는 낯선 청년과 함께….먼저 밥부터 먹고 서산으로 가자고 하며 곱창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어요. 우리 둘은 배고픈 탓에 게걸스럽게 먹으며 구미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이야기를 안주 삼아 소주도 한 잔 했지요.
"이것도 다 추억이야, 재미난 얘깃거리를 만들었구먼. 하하하!""아이고, 그나저나 어째 여기까지 자전거를 가지고 올 생각을 했대?""휴가가 삼일이나 되는데, 서산까지 와서 자전거 안 타고 갈 수는 없잖아. 더구나 여긴 볼거리도 많던데 말이야. 하하하."
다음 편에는 서산 가야산 둘레와 백제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보원사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사흘 동안 휴가를 보내면서 둘러본 몇 곳을 사진으로 먼저 구경해볼까요?
2007.08.16 16:0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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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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