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극으로도 공연된 <낙타상자>. 인력거를 끌고 가는 주인공 샹쯔(상자).김종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중국 최고의 문인으로서 자신에게 썩 탐탁지 않은 사회주의체제에 대해 그리고 문혁에 대해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하려다가 끝내 죽음을 당하고 만 한 지식인의 말로를 보면서, 인간이 만든 사회체제의 불완전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주관적인 느낌인지는 몰라도, 라오서 기념관이 무언의 방법으로 웅변하고 있는 메시지 역시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원들의 머릿속을 통제하고 나아가 의사표현까지 억압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간의 사회체제는 그처럼 자신 없는 시스템일까. 스스로 항복해 오는 지식인에 대해서까지 그토록 참혹한 종말을 안겨야 할 만큼, 인간의 사회제체는 그렇게 잔혹하고 폭력적인 것일까.
라오서가 생존을 위해 사회주의 중국에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애쓴 측면을 배제하고 이 문제를 바라볼 때에, 사회체제에 부적합한 인물은 어떻게든 순응시키거나 제거할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 시스템의 한계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라오서는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1949년 이전의 자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사회주의가 옳은가 자본주의가 옳은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1949년 이후의 중국은 1949년 이전의 라오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라오서가 누리던 표현의 자유는 더욱 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중국은 인민에게 경제적 평등과 토지를 보장했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하지만, 사회와 대립되는 사상의 소유자를 정상적인 경쟁이 아닌 비정상적인 억압의 방법으로 억눌렀다는 점에서는 용렬한 체제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평등과 자유를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체제는 현재까지는 출현하지 않았다.
인간의 자유 특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비단 사회주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양적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사회체제는 그 구성원들에게 한정된 표현의 자유밖에 제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리고 '할당된' 표현의 자유를 '초과 사용'하는 구성원에 대해서는 최고 사형 혹은 암살이라는 무서운 형벌이 주어졌다.
인간의 자기표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할 사회체제 혹은 국가가 도리어 그 자신의 자기표현을 위해서 창조주(주권자)인 인간의 자기표현을 억압하고 심지어는 살상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또 이제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체제가 그 같은 만행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생각하면서, 인간은 정말로 완벽한 사회체제를 창조할 수 없는 걸까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라오서 기념관이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나 국가가 자기 자신의 표현을 위해 구성원인 인간의 표현을 억압하고 있는 그런 모순된 현실에 대한 무언의 저항 같은 것. 그리고 인간이 만든 체제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
평등을 보장하는 대신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표현의 자유를 약간 보장하는 대신에 평등을 억압하는 사회. 그 어느 사회도 완전한 체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 사회체제 속에서, 마치 굴곡진 낙타 모양의 시즈먼역처럼 인간의 정신도 한없이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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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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