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기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고

[광촌단상5] 벌써 자신감만으로 덤빌 나이는 넘은 것인가?

등록 2007.08.14 10:24수정 2007.08.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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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에 갇힌 모과나무 곁에 철쭉은 목만 보이고 동백은 찾을 수 없다. ⓒ 홍광석

“그 정도쯤이야!”

우거지는 풀을 보며 느긋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풀의 성장 속도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앞질렀다. 장마철이라고 해도 장마 같지 않은 초여름이었음에도 풀은 여지없이 아내의 뜨락을 뒤덮고 말았다.

방학 후, 날마다 한 더위를 피해 오후 4시쯤 도착하여 해 질 때까지 아내는 잔디밭에서 땀으로 목욕을 하고 나는 풀에 갇힌 나무를 구하기 위해 낫을 들고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7월을 보냈어도 여전히 풀은 여전히 뜨락에 가득했다. “돌아서면 풀”이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했던 기간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좋다는 심리적인 만족감과 신체의 컨디션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 몸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낫질과 괭이질이 원인이었는지 손(특히 오른손)이 붓고 아침이면 중지와 약지의 마디가 자유롭게 쥐어지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전혀 예상 못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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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으로 나무 주변의 풀을 베어 바람길을 내주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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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으로 치기 전 풀에 덮혀 보이지 않는 길과 나무 ⓒ 홍광석

육체적인 노동에 익숙하지 못한 원인도 있을 것이다. 일에 대한 요령부족도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또 아내의 말대로 나이를 잊은 채 나를 과신하고 의욕만 앞세운 점도 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 정도’의 일에 내 몸이 이상해졌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쉬면 낫겠지’하는 생각으로 며칠 낫과 괭이를 멀리했더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다시 일을 했더니 손가락의 상태도 덩달아 나빠졌다. 뜨락에 가기 전에는 “오늘은 그늘에서 놀다와야지”하고 아내 앞에서 다짐하지만 웃자란 풀을 보고 앉아 있을 수 없는 현실이 문제였다.

마침내 예초기를 장만했다. 사실 농촌에 살려면 예초기가 필수품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농장이라고 볼 수 없는 우리 땅에 예초기가 굳이 필요할까 싶었고 또 낫과 괭이만 있으면 웬만한 풀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 때문에 예초기 구입을 미루었는데 결국 풀의 위력을 제대로 몰랐던 무지와 체력의 상태를 과신했던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만 꼴이다.

예초기를 사용하니 일은 한결 쉬워졌다. 처음 사용해보는 기계라 걸핏하면 흙 속에 날을 꽂기도 하고 돌을 갈아서 잠시 놀라게도 했다. 그럼에도 “그 정도쯤이야…!”하는 생각으로 덤벼들건만 한 철도 넘기지 못하고 예초기에 자존심을 맡긴 남편의 심정을 모르는 것인지 아내는 “이제야 제법 농부 같다”고 놀리며 예초기를 업은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다고 아내의 뜨락을 만들고 있는 나로서는 아내를 나무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우리는 풀에 대한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유일한 동지요 심어놓은 야콘, 고추, 고구마와 상추 등을 가꾸는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가 부부를 이룬 30년 가까운 세월을 더듬어 봐도 요즘처럼 뚜렷한 공동목표를 향해 매일 낮 땀을 흘려본 기억은 없다. 때문에 공동의 노동은 부부의 정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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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낫질하여 찾아낸 길과 나무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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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를 시운전하고 있는 내 뒷모습을 아내가 담았다. ⓒ 홍광석

시골 아낙네의 하루 품삯이 3만원, 남자의 품삯이 7만원이라니 둘의 품삯을 합하면 10만원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쓰지 않았으니 10만원을 우리가 번 것 아니냐는 이상한(?) 계산법으로 아내를 웃긴다. “거기에 우리가 가꿔 먹는 채소 값은 덤이요, 지난 7월 초, 이곳저곳 다니면서 철쭉 새순을 잘라다 삽목 해 놓은 묘목이 그런대로 잘 자라주고 있으니 그것도 나중에는 한 밑천 될 것”이라고 하면 얼마나 엉터리 계산임을 모르지 않은 아내도 자신은 대학을 졸업한 고급인력인데 일당이 고작 3만원이냐고 따진다. 그렇지만 애써 농담을 담은 흐뭇한 계산을 해도 여름의 해가 길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부부 뿐일까?

결코 풀을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풀과 공생을 꿈꾸었건만 어느 해보다 금년 여름은 길다. 그리고 내 체력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낀 여름이다. 이제 무슨 일이든 해보기 전에 “그 정도쯤은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을 과신해도 좋을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점이 소득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억울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어쩌랴!

꽃나무를 심었던 봄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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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기의 어려움을 절감하다보니 풀이 나기 전 황량한 느낌을 주었던 봄날이 가끔은 그립다. ⓒ 홍광석

#광촌 #풀베기 #낫 #예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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