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인심 덕에 즐거웠던 야유회

등록 2007.08.13 10:23수정 2007.08.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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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으면 고향부터 찾고, 몸이 아프면 가족부터 생각하는 게 인생살이다. 몇 년 전, 아내는 1년 사이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게 못내 아쉬워서인지 가까이 살아도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외에는 친정을 찾지 않았다.


그러던 아내가 요즘 부쩍 친정식구들을 찾는다. 건강했던 사람이 올해 들어 병원 신세를 자주 지게 되니 마음마저 약해졌다. 몸이 아파 고생하자 친정 동기간들이 먹을 것 싸들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러니 동기간이 최고라는 것, 동기간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나 보다.

며칠 전, 처갓집 남매들끼리 야유회를 가자는 파발이 왔다. 아내는 몸이 아파도 신이 났지만 병원에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내가 걸림돌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 부부를 생각해 무조건 가까운 장소를 택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처가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곳이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에 있는 처남댁의 친정집이었다.

시골의 안마당 풍경
시골의 안마당 풍경변종만
시골은 집안에서 자연이 숨 쉬고 있어 좋다. 좁은 안마당에 여러 가지 꽃과 농작물이 골고루 심어져 있다. 고추, 가지, 호박 등의 농작물 옆에서 맨드라미와 수세미가 작은 꽃들과 어우러지며 집안을 환하게 밝힌다.

오이, 가지, 옥수수 등 시골에는 먹을 게 지천이다. 그런 것들이 눈길이나 손길이 닿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즉석에서 딴 가지 하나를 손으로 쓱쓱 닦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안마당에 펴놓은 돗자리 위에 둘러앉아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평상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평상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변종만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더 덥게 했다. 마을 앞 냇가로 나가 쉼터를 찾아봤지만 한자리에 앉을만한 곳이 없다. 세상인심 야박해졌다지만 시골 인심은 아직 그대로다. 냇가 옆에 있는 가게 주인이 선뜻 손님 받는 평상 두 개를 내준다.


이웃집에 놀러온 손님에게 호의를 베풀 만큼 시골 사람들의 마음은 순수하다. 가족들 모두 평상에 둘러앉아 물에 발을 담갔다. 비온 끝이라 물이 맑지 않았지만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멋진 포즈로 카메라를 향해
멋진 포즈로 카메라를 향해변종만
시원한 물가에서 먹을 것까지 실컷 먹고 나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형부와 처제, 시누남편과 처남댁이 멋진 포즈로 카메라를 향해도 가족끼리의 모임이라 흉이 될 것도 없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이니 냇가를 금방 웃음바다로 만든다.


냇가에 나오니 어른들도 나이 먹은 것 생각하지 않는다. 물장구를 치면서 객기도 부려보고, 흥이 나니 노랫가락도 저절로 나온다. 언젠가 먼 옛날이 되어버린 시절을 생각하며 남자들끼리 어깨동무도 했다.

신이 난 아이들
신이 난 아이들변종만
어른들만 신이 난 게 아니다.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물 속으로 마구 뛰어든다. 아이들을 단속하느라 힘이 들어도 어른들은 마냥 즐겁다. 저희 집 안방인양 아예 물가에 드러누운 아이도 있다.

어느 집안이나 아이들이 보배다. 아이들에게는 희망과 행복이 넘치고, 아이들이 함께해야 웃을 일도 많다. 어른이나 아이나 이런 날만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평상 옆 빨래터에서
평상 옆 빨래터에서변종만
시골에서는 아직 마을 앞 냇가의 빨래터가 삶의 한 부분이다. 한 아주머니가 열무를 씻으러 냇가에 나왔다. 인사를 나누지 않아 누군지도 모르는데 처남과 동서가 나물을 씻어준다며 덥석 바구니를 빼앗았다. 그래도 나물 씻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허허 웃는 게 시골인심이다.

나이 600살의 용송에서
나이 600살의 용송에서변종만
이곳은 냇물을 경계로 충북과 경북이 이웃하고 있는 지역이다. 옆 마을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2구에 천연기념물 제290호인 용송이 있다. 해 넘어가기 전에 용송을 보기 위해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물놀이를 마쳤다.

약 600살로 추정되는 용송은 왕소나무로도 불리는데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20여년 전까지 삼송리 1구에 살았던 처가 식구들은 예전에 봤던 용송을 얘기하며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다. 나무 아래에서 또 다른 추억 남기기를 하느라 즐거워하는 모습을 왕소나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게 앞의 암석 의자
가게 앞의 암석 의자변종만
마을의 가게 앞에 자연석으로 만든 의자가 놓여 있다. 필요에 따라 잘라낸 후 쓸모가 없어진 암석이다. ‘엉뚱한 생각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낳는다’고 했다. 모습이 생뚱맞은 의자이지만 일터에서 돌아온 농민들에게는 편안한 쉼터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사실 ‘어느 자리에 있느냐’보다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들 때문에 쓸모없는 암석덩어리가 의자로 다시 태어났다.

어느 자리에 있건 있는 자리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처가 식구들의 배려에 고마워하고, 동기간의 우의에 즐거워했던 야유회 말미에서 암석 의자 하나가 어떻게 사는 것이 떳떳한 삶인지를 가르쳐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과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화북면 입석리 #청천면 삼송리 #농촌 #용송 #야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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