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
색동고무신 추억, "어머니 죄송합니다"
내가 처음으로 기차여행을 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의 교통수단은 오로지 증기기관열차.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 다녔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기차를 타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 오셨던 어머니를 나는 무지하게 기다렸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나를 공주로 만들 작정이었나 보다.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색동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머리에 댕기도 꽂고, 신발도 색동 신발을 신고 다녔다. 그렇게 예쁜 물건들은 어머니께서 기차를 타고 나가야 사 올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때 나는 기차 타고 오시는 어머니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지만 나는 차멀미를 심하게 해서 한 번도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따라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어머니께서 어림잡아 사 오시는 치마와 저고리는 내 몸에 딱 맞았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하지만 색동신발이 문제였다. 크기가 맞지 않아 여러 번 바꿔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색동신발을 사기 위한 어머니와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됐다. 지금에야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도 있지만, 당시는 멀미약을 먹을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날, 나와 어머님과의 화려한 기차여행은 잿빛이 되었다. 그리고 온몸이 뒤집혔고, 내장까지 뒤집혔다. 그리고 온 세상이 다 뒤집혔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어머님께서 사주신 색동고무신을 가슴에 꼬-옥 안고 왔던 사실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날 저녁 내 색동 고무신은 도둑을 맞았다. 색동치마 저고리엔 색동고무신을 신어야 제격인데, 다음날 나는 엉-엉 울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떼를 부렸던 것이다.
고 선생님이 증기기관차에 몸을 싣고 여정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40년 전쯤, 어머니와 화려한 외출, 그 순간 속에서 반성문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세상에서 떠나신 어머님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