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쓰는 반성문

색동고무신 추억... "어머니 죄송합니다"

등록 2007.08.10 20:06수정 2007.08.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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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마을 주변에서 철로기차를 타는 사람들.
기차마을 주변에서 철로기차를 타는 사람들.김강임
이벤트 거리, 철로 기차로 향수 느껴


추억을 끄집어 낸다는 것은 순간이다. 지난 7월, 전남 광주권 비교시찰에 나섰던 우리 일행은 남은 시간을 섬진강 기차마을로 향했다. 섬진강 기차여행은 내 유년시절 증기기관차에 대한 향수와 추억까지 더듬는 여정이었다.

광주에서 목포방면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들자 푸른 광야가 펼쳐졌다. 곡성 I.C.를 지나 섬진강 기차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곡성 역 주변은 한산했다.

전남 곡성역, 여느 시골 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변에 있는 이벤트거리. 2006년 개봉한 영화 <아이스케키>의 촬영 현장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었을까. 70, 80세대들을 향수에 젖게 하는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그 시절엔 익숙했던 이름들이 어쩌면 촌스런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 일행은 그저 비포장 황톳길을 10여 분동안 걸었다. 그리고 추억을 말했다.

전남 곡성역의 풍경입니다
전남 곡성역의 풍경입니다김강임
기억 해 낼 수 있는 추억들은 모조리 추억하고 철로의 레일 위에서 사진도 찍어댔다. 우리들의 추억의 노래를 듣는 철로 옆 코스모스도 추억 속에 잠겼다.

80년대 우리들만의 길거리에서 만났던 제과점, 영화관, 양복점, 자장면집, 그 이름들이 왜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졌을까? 아마 그것은 증기기관차를 타고 달렸던 사람들이 지금은 빠른 세상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은 아닐는지.


증기기관차 하면 사람들은 고향과 향수를 떠올린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고속철도(KTX)를 꿈꾸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어찌 보면 지난 역사는 현재의 추억 같다.

매표소 안내
매표소 안내김강임
프랫홈에도 추억이 있는곳이다.
프랫홈에도 추억이 있는곳이다.김강임
기차마을에는 증기기관차를 전시하고 있다.
기차마을에는 증기기관차를 전시하고 있다.김강임
곡성 역에서 기차는 11시에 떠났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우리를 실은 기차는 곡성 역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했다. 옆에 앉아있던 선생님께서는 차창 가로 스치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한다.

"김 선생님, 저기 보세요.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어요!"
"아 -하, 고추가 탐스럽게 익어가네요!"

평소 말수가 적었던 고 선생님은 추억 열차에 몸을 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벌써 들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고 선생님의 고향은 시골이라 했던가. 자신이 살아왔던 풍경들을 애착하고 추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섬진강으로 가는 기차는 4명이 서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증기기관 열차, 온몸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고 선생의 호들갑에도 내 마음은 흔들거리지 않았다. 나는 기차 안에서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고 선생님이 바라보는 풍경을 바라볼 수 없을 수밖에.

김강임
김강임
색동고무신 추억, "어머니 죄송합니다"

내가 처음으로 기차여행을 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의 교통수단은 오로지 증기기관열차.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 다녔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기차를 타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 오셨던 어머니를 나는 무지하게 기다렸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나를 공주로 만들 작정이었나 보다.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색동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머리에 댕기도 꽂고, 신발도 색동 신발을 신고 다녔다. 그렇게 예쁜 물건들은 어머니께서 기차를 타고 나가야 사 올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때 나는 기차 타고 오시는 어머니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지만 나는 차멀미를 심하게 해서 한 번도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따라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어머니께서 어림잡아 사 오시는 치마와 저고리는 내 몸에 딱 맞았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하지만 색동신발이 문제였다. 크기가 맞지 않아 여러 번 바꿔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색동신발을 사기 위한 어머니와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됐다. 지금에야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도 있지만, 당시는 멀미약을 먹을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날, 나와 어머님과의 화려한 기차여행은 잿빛이 되었다. 그리고 온몸이 뒤집혔고, 내장까지 뒤집혔다. 그리고 온 세상이 다 뒤집혔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어머님께서 사주신 색동고무신을 가슴에 꼬-옥 안고 왔던 사실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날 저녁 내 색동 고무신은 도둑을 맞았다. 색동치마 저고리엔 색동고무신을 신어야 제격인데, 다음날 나는 엉-엉 울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떼를 부렸던 것이다.

고 선생님이 증기기관차에 몸을 싣고 여정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40년 전쯤, 어머니와 화려한 외출, 그 순간 속에서 반성문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세상에서 떠나신 어머님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

가정에서 내린 사람들은 섬진강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넜다가 다시 돌아온다. 마치 추억의 강을 건너는것처럼
가정에서 내린 사람들은 섬진강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넜다가 다시 돌아온다. 마치 추억의 강을 건너는것처럼김강임
섬진강변에 있는 가정역.
섬진강변에 있는 가정역.김강임
저마다의 추억 떠나는 기차여행의 매력

사람들은 추억을 더듬기 위해 기차 마을에 간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곡성 역에서 섬진강이 흐르는 가정 역까지 달려가며 색동 고무신을 가슴에 안고 달려갔다. 그리고 내 차창 가에는 고무신을 잊어버리고 학교 가지 않겠다고 떼를 부렸던 고집쟁이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전 11시 30분, 기차는 가정 역에서 멈췄다. 가정 역 주변은 섬진강을 가로 질어 길게 다리가 놓여 있었다. 동행했던 선생님들은 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나는 가정 역에 서서 흐르는 섬진강 강물만 바라봤다.

오전 11시 45분, 가정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진한 수증기를 품어댔다. 내가 앉은 의자 맞은편에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색동고무신을 안고 있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추억의 기차 속으로 함께 달렸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12일 섬진강 기차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기차에 대한 추억을 반성문으로 써 보았네요.

덧붙이는 글 지난 7월 12일 섬진강 기차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기차에 대한 추억을 반성문으로 써 보았네요.
#섬진강 #기차마을 #반성문 #색동고무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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