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류암 가는 길. 산죽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안병기
내 몸은 때때로 찰현악기의 활이 된다
청류암을 향해서 길을 간다. 좀 전에 내려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삼거리에서 만난 이정표는 청류암까지의 길이 2.7km 남았다고 알려준다. 산죽이 빼곡히 들어찬 산길을 지나간다.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곧장 모든 소리와 격리될 것 같은 으슥한 길이다.
나는 산죽이 있는 길을 좋아한다, 산죽이 있는 길은 마치 찰현 악기 같다. 찰현 악기란 현을 활로 마찰해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들을 말한다. 바이올린이나 해금처럼 스칠 때마다 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내 몸이 일종의 활인가?
산을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 비로소 계곡을 만난다.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반갑다. 신발을 벗고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근다. 계곡 옆에서 자라는 몇 그루의 우산나물이 텃세라도 부를 듯한 자세로 흘겨본다. 얼른 발을 닦고 나서 길을 서두른다. 문득 산길이 끊어지면서 큰 길이 나온다. 청류암 0.2km. 이정표 아래 이정표 아닌 이정표가 덤으로 붙어 있다.
'경내 출입금지.'
원래 내 계획은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다. 운문암에서 백양사로 곧장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산행 중에 만난 스님들이 내게 "꼭 청류암을 다녀가라"라고 권하는데 혹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입(入) 했다가 곧장 출(出)당하더라도 일단은 가고 볼 일이다. 청류암 경내로 들어서자 한 스님이 풀을 깎고 있다. 합장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자 얼른 답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