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 해도 되는 걸까요?

사회경험과 돈의 소중함 배운 중학생 딸의 아르바이트

등록 2007.08.09 16:13수정 2007.08.1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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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65.5cm
취미: 친구들과 찜질방에서 수다 떨기
좋아하는 음식: 초밥
성격: 울음이 많고 고집이 센 편
특기: 합기도 2단, 특히 쌍절봉에 능함
장래 희망 : 미술교사, 일식 요리사, 경호원 등 다수



이게 누구의 신상명세인지 궁금하시지요? 바로 오늘부터 제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인생수업을 막 시작한 '중딩이' 제 딸입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성적표를 한 장 달랑 들고 와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소파에 편한 자세로 누워 자기 말로는 영어공부라고 하는 비디오 감상을 하다가 냉장고 문이 닳도록 열고 닫으며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한 걸까?" 한탄하는 사춘기 소녀랍니다.

미숫가루에 얼음 동동 띄워서 폼나게 먹고, 아내가 이불이라도 햇볕에 내다 말리라고 몇 번을 소리쳐야 꾸부정하게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영 눈꼴사나웠던 참이였는데, 마침 작년 말 해물 샤브샤브 뷔페식당을 개업한 친구가 방문했습니다.

친구 부부와 자녀교육이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애 너희 식당에서 며칠 일 좀 시켜볼래?" 했더니 "글쎄,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할 수 있을까?" 이러는 겁니다.

저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처럼 전화로 친구랑 수다를 떨고 있는 딸애를 불렀습니다. "너, 놀기도 지겹지? 이참에 아저씨네 식당에서 한 번 일해 볼 생각 없니?"하고 물어보았지요.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딸애가 이러는 겁니다.


"아저씨, 하루에 얼마 주실 건데요?"
"야, 그거야 너 일하는 거 보고 결정해야지. 일 잘하면 많이 주고, 일 못하면 조금 줘야지. 그런데 네가 일하다가 손님을 기분 나쁘게 해서 손님이 돈을 내지 않고 가버리거나 접시라도 깨면 하니 네가 물어내야 돼."
"당연하죠. 그러면, 식사는 뭘 먹어요?"


우리 식구도 친구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 녀석의 생각으로 그곳에서 일하면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거라는 기대가 생겼나 봅니다.


"그거야 직원용으로 따로 밥을 해서 몇 가지 반찬이랑 먹지. 식당에 있는 음식은 손님들 거야. 나도 지금은 아빠 친구로 너한테 말할 때도 부드럽게 말하지만 식당에서는 사장이거든. 그러니까 하니가 식당에서 일하게 되면 사장님하고 불러야 돼.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들면 눈물이 찔끔 나게 혼낼 수도 있고 당장에 그만두라고 할 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결론부터 말하면 딸아이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일주일을 일해보고 쌍방이 더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한 주를 더 하기로 약속을 하고 식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직원은 오전 10시까지 식당에 출근해서 오후 10시까지 일하는데, 딸은 오후 6시까지만 일하기로 했습니다.

딸아이가 출근한 첫날, 나는 직장에 출근해서 덩치만 컸지 마음은 아직 어린 딸 생각이 나서 몇 번을 친구에게 전화라도 해볼까 망설이다 꾹 참았습니다.

오후 4시경 '띵동'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신호가 와서 받아보니, "하니가 적응속도가 빠르고 열심히 일하고 있음"이라고 적혀 있어서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훈련 요망."

퇴근하고 보니 아직 딸애가 집에 없었습니다.

"여보, 하니 아직 안 왔어요?"
"조금 늦네요."

딸아이가 오늘 어떻게 일했는지 궁금해 현관문을 바라보는데 드디어 초인종이 울립니다. 우리 식구 모두가 현관문에 서서 박수로 딸아이를 맞이했습니다. 딸아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식사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하지만 밥보다 저는 딸아이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 입이 근질거렸습니다만 간신히 입에 지퍼를 달았지요.

밥과 반찬이 어느 정도 식기에서 위로 위치 이동하자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져보았습니다.

"우리 하니, 식당에서 일해 보니 어땠어?"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아빠 나 내일도 가야 돼?"
"약속한 대로 5일은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아가씨, 조금 힘들다고 그만둬 버리면 어른이 돼서도 쉽게 포기하는 습관이 들지 않을까 아빠는 걱정이 되네요."

아내는 부녀간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이러는 겁니다.

"여보, 하니가 힘들다면 놔두는 게 어때요. 공부도 해야 되고…."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고 거짓말도 앞뒤가 맞아야 하는데 부창부수인 부부의 입이 맞지 않으면 아버지 말에 무슨 위엄이 서겠습니까. 저라고 딸아이가 힘든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 쉬운 일이 몇 가지나 되나요? 그때마다 힘들다고 때려치우면 언제 제 딸이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밟고 다니겠습니까?

아침에 딸의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손수건과 화장지에 코피가 말라 얼룩얼룩 굳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아직 어린 아이한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 마음이 흔들렸지요.

"하니야, 너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뭐가 제일 힘들어?"

딸은 아빠가 묻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합니다.

"식사 시간 외에는 계속 서 있어야 하는 거하구요, 어떤 아저씨가 제가 접시를 치우면서 국물이 조금 튀었다고 막 야단치실 때도 힘들었지만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나는 딸아이가 일하다가 손님들이 조금 뜸한 시간에 팀장 아줌마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라고 해서 혼자 구석에서 핥아먹다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처음 아르바이트하던 기억이 났습니다.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채소가게에서 배달 일을 했는데, 목에 수건을 걸치고 연방 땀을 닦으며 그해 여름 사타구니에 땀띠가 날 정도로 자전거를 타야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짐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싣고 가다가 저는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수박 두 덩어리는 박살이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이 깨져버렸지요. 아픈 다리도 다리지만 깨진 수박 두 덩어리는 나의 하루 일당보다 많았습니다. 붉고 검은 그 잔해들을 보며 눈물도 나오지 않아서 한참을 서 있었던 그날.

좌우간 딸아이는 5일을 넘치도록 꽉 채웠습니다. 여기서 '넘치도록'이라는 의미는 손님이 많아서 바쁠 때는 아이 스스로 한두 시간씩 더 일하고 왔다는 말입니다. 거기다 딸애는 자기가 그동안 식당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타이핑해서 사장님에게 드렸다고 합니다.

이 여름 방학동안 딸의 키와 마음이 부쩍 자란 느낌입니다. 다음 겨울방학에는 친구랑 같이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이러다 유명한 식당을 경영하는 딸을 두는 건 아닐까요? 이 아빠도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방송 라디오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방송 라디오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딸아이 #아르바이트 #중학생 #식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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