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실리아 시인한국문학평화포럼
척양척왜 이루는 일이 진정한 해방
여전히 약초보다는 독초가 득세를 부리는 현실 속에서 문학인들은 계륵처럼 존재하는 외세를 어찌할 것인가를 전봉준에게 묻는다. 문학인들은 일제가 수탈해 가고 남긴 고창의 너른 들을 바라보며 전봉준이 피로써 싹 틔운 곡식들에게 경배한다.
"그러니 제발 선운사에 가거들랑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 막걸릿집 여자의 / 육자배기 가락에 /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라는 구절에만 심취하지 말고, 차라리 저 산 아래 농민들의 울분을 들어 줄 수는 없을까."
임헌영 회장이 말하고자 하는 강연의 초점은 여전히 짓밟히고 있는 '농민'에게 맞춰져 있다. 농민의 삶이 피폐해졌을 때 나라는 스스로 무릎 꿇어 외세를 끌어들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실패는 정부를 일제에, 미제에 무릎 꿇게 했다.
남북 분단의 씨앗을 제공한 일제의 만행은 말로 형언할 수조차 없다. 녹두꽃보다 국화꽃을 사랑한 백성들에게도 죄는 많다. 다행스럽게도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니 그것으로나마 억눌린 분노에 대한 아픔을 위로받는다.
죽창 끝에 매달어 우금치 넘으며
허연 광목에 숯 검댕이로 눌러 쓴 척양척왜의 깃발도
이국의 감옥 바람벽에 손톱 끝으로 써내려간 조국의 노래도
눈물을 삼키며 학교 담벼락에 남모르게 새기던
타는 목마름과 양키 고 홈의 노래도
이젠 다 내려야 하리
갑년이 돌아왔건만 나는 철부지 스무살
제각각 아린 가슴 하나씩 그러안고 살지만
이젠 누구 탓이라고 말하지 말자
숱하게 내걸었던 날선 구호들
하나씩 꺼내어 삼켜 버릴 수 없나
내장 깊숙한 곳에서 제대로 익도록 내버려 두고
어느날 문득 발효되어 싱그러운 꽃향기 진동할 때까지
절대로 절대로 꺼내보지 말자
그리하여 우리네 가슴이 온전히 따뜻해져서
눈물 마르고 까진 상처와 무른 눈가 아물었을 때
깨끗한 새 헝겊에 다시 한번 나는 쓰리라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한없이 그윽한 눈길로
너나없이 그대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
- 정용국 평화시 낭송 '이제 날선 깃발은 내려야 하리' 전문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문학인은 시인 정양을 비롯해 양정자, 홍일선, 심호택, 차옥혜, 이승철, 정용국, 손세실리아, 조성국 시인과 소설가 강기희 등이며, 동화작가 유진아 등 전국의 문인들과 일반인들이 척양척왜의 의미를 함께 되새긴다.
시인들의 평화시 낭송에 이어 오우열 무당 시인과 홍세미 만신의 '척양척왜 살풀이 굿'이 이어지고, 서울예대 김기인 교수가 이끄는 '김기인과 스스로춤모임'의 춤공연과 가수 손현숙의 노래 공연이 행사의 의미를 한층 북돋운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북의 정상이 꺼리낌 없이 만나는 중에도 일제의 잔재인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일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정신과 몸을 해할 독초를 키워내고 있습니다. 털어야 할 것을 털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지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난 역사의 피맺힌 한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행사를 준비한 이승철(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국장) 시인은 고창 문학축전의 의의를 전했다. 지난 역사를 이해하고 승화시키는 일은 진행 중인 역사일 때 더욱 힘들다. 수혜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현실에서 전봉준을 만나는 발걸음이 반가우면서도 무거운 이유이다.
힘겨운 시대를 잘도 피해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들이 녹두장군 전봉준의 삶터를 찾는 일은 죄스럽고도 부끄럽다. 하지만 언제까지 죄인으로 남을 수는 없는 일. 문학인들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죄스럽고 부끄러운 마음 접고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