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두 동강인데 머리도 두 갈래면..."

외할머니 눈물은 역사의 눈물

등록 2007.08.09 09:52수정 2007.08.0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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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의 나들이. 단기 4289년(서기 1956년)의 정릉의 오후 한때, 오른쪽의 손지갑을 지닌 이가 어머니(이순이)
실향민의 나들이. 단기 4289년(서기 1956년)의 정릉의 오후 한때, 오른쪽의 손지갑을 지닌 이가 어머니(이순이)송유미 소장
통일, 그는 언제 오는가


할아버지(송종섭옹)는 함경북도 무산군 연사면 사지리 155번지에 아직도 살고 계실까. 큰 외삼촌(이수동옹)은 아직도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동 16번지에 살고 계실까.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6·25전쟁의 비참한 이야기는 늘 돌아가신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서 듣고 자랐다. 외할머니(고 서기석)는 6·25전쟁 전에 시집온 딸을 만나러 오셨다가 그 원한의 38선에 가로막혀 잉여의 몸으로 살다가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이산 2세대인 나는 조국 분단의 현실에 대해서 글도 시도 써지지 않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은,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글이든 말이든 표현되지 않는 것일까.

목측의 그리운 어머니의 고향

그리운 통일
그리운 통일송유미
1994년 여러 문인들과 '분단문학기행'이 있어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태풍전망대, 휴전선 등을 직접 돌아볼 수 있었다. 바람에도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휴전선에서 임진강을 바라보니, 분단의 아픔이 손에 잡히듯 느껴졌다.

망원경을 잡으니 밭을 매고 있는 북한 농부들의 모습이 선명토록 크게 어른거렸다. 그러나 목측에 할아버지와 외삼촌을 두고, 망원경으로 훔쳐보고만 있자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녹슨 철마가 멈추어선 월정리,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님의 고향으로 달려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한탄강은 통곡하며 흐르다


월정리. 녹슨 철마는 달리고 싶다
월정리. 녹슨 철마는 달리고 싶다송유미
초토의 노동당사와 한으로 가슴을 치며 흘러내리는 한탄강도 시간을 거슬러 흘러가고 있었다. 분단의 현장, 매점에서 차[茶]를 파는 아줌마의 억센 사투리조차 낯설고 한 핏줄이란 친근감이 들지 않았다.

이름을 다 모를 야생화와 가마우지떼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신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반도의 허리가 두 동강 난 비극의 현장… 비무장지대가 온통 지뢰밭이라는 말에 또 한 번 가슴이 멍멍했다. 어떤 시로 어떤 그림으로 어떤 음악으로… 저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명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대책 없이 막막할 뿐이었다.


어릴 적 나는 외할머니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다. 머리는 두 갈래로 묶지 마라, 북쪽으론 침을 뱉지 마라, 사과를 두 쪽으로 나누지 마라, 친구들과 절대 패를 나누어 전쟁놀이는 하지 마라 등 나뉘는 것과 둘이란 숫자에는 유독 신경이 예민해지곤 하셨다.

역사의 눈물은 누가 받아 우는가...

어린 난 할머니의 이산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이런 것들이 마냥 불만이었는데, 할머니는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나를 깨우곤 했다. 난 잠에 취해 뜻 없이 칠성단 불단에 고개만 숙였는데, 할머니는 그때마다 행주치마에 눈물을 닦곤 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차디찬 전율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피보다 진한 할머니의 눈물이 역사의 눈물이라고 여겨진다.

할머니는 결국 그렇게 기다리던 통일을 보지 보하고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가 남긴 유품에는 하얀 헝겊에 싸인 태극기와 열쇠가 있었다. 외할머니의 오라버니를 생각하며 간직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평소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험난한 외길을 걸어오신 오라버니에 대해 냉담하셨다. 당시 어린 나는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실향민의 나들이의 한때. 맨 왼쪽, 털 조끼를 입은 외할머니(고 서기석)
실향민의 나들이의 한때. 맨 왼쪽, 털 조끼를 입은 외할머니(고 서기석)송유미 소장
역사는 개인의 뿌리를 잃게 만들고...

다만 열쇠는 고향 집 곳간 열쇠였을 거라며 그것을 끌어안고 처절하게 울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명문 가계를 풍비박산으로 만든 역사의 한을 결국 넘어서지 못하고, 그분이 그토록 고국에 돌아와 일가를 찾는데도, 끝내 그분의 물질적 유산마저 외면하셨다.

모든 증언을 안타깝게 세월의 풍화에 재를 날리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이제 와서 새삼 노력하지만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전라도 땅에서 함경도 청진까지 흘러들어가게 된, 죽은 사람처럼 존재해야 했던 외할머니의 끊어진 뿌리 찾기는, 38선이 가로막힌 현실에서 이 또한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모쪼록 지하에서 두 분이 만나 뼈아픈 역사의 원한을 풀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산가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아무리 고통과 피를 흘린 6·25전쟁은, 내게 간접체험에 불과한 것일까. 난 그분들의 고통과 아픔의 형상화에서 언제나 난해해진다. 결국 내겐 6·25전쟁은 피상적인 아픔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나 몸으로는 절실히 느끼고 있다. 외할머니와 부모님의 고통이 모두 내 몸의 핏줄을 돌고 있다는 것을.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당당하게 걸어가셨을 외할머니의 넋이, 통일이 되어 꼭 돌아올 것 같다. 정말 그토록 기다리던 통일, 그는 언제 오는가… 언제까지 이산가족들에게 갈 수 없는 나라로, 망향의 망부석을 만들 것인가.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생각 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어머니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남은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라구요'-강산에
#통일 #분단 #실향민 #서기석 #서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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