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의 나들이의 한때. 맨 왼쪽, 털 조끼를 입은 외할머니(고 서기석)송유미 소장
역사는 개인의 뿌리를 잃게 만들고...
다만 열쇠는 고향 집 곳간 열쇠였을 거라며 그것을 끌어안고 처절하게 울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명문 가계를 풍비박산으로 만든 역사의 한을 결국 넘어서지 못하고, 그분이 그토록 고국에 돌아와 일가를 찾는데도, 끝내 그분의 물질적 유산마저 외면하셨다.
모든 증언을 안타깝게 세월의 풍화에 재를 날리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이제 와서 새삼 노력하지만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전라도 땅에서 함경도 청진까지 흘러들어가게 된, 죽은 사람처럼 존재해야 했던 외할머니의 끊어진 뿌리 찾기는, 38선이 가로막힌 현실에서 이 또한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모쪼록 지하에서 두 분이 만나 뼈아픈 역사의 원한을 풀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산가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아무리 고통과 피를 흘린 6·25전쟁은, 내게 간접체험에 불과한 것일까. 난 그분들의 고통과 아픔의 형상화에서 언제나 난해해진다. 결국 내겐 6·25전쟁은 피상적인 아픔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나 몸으로는 절실히 느끼고 있다. 외할머니와 부모님의 고통이 모두 내 몸의 핏줄을 돌고 있다는 것을.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당당하게 걸어가셨을 외할머니의 넋이, 통일이 되어 꼭 돌아올 것 같다. 정말 그토록 기다리던 통일, 그는 언제 오는가… 언제까지 이산가족들에게 갈 수 없는 나라로, 망향의 망부석을 만들 것인가.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생각 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어머니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남은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라구요'-강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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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두 동강인데 머리도 두 갈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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