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만난 사샤와 바샤 형제. 이 형제와 보드카 8병을 마시면서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는 법을 마스터했다.강병구
블라디보스토크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상상했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깐깐한 입국심사부터 시내로 향하는 동안 두세 번은 받아야했던 검문까지, 낯선 외국인 여행객에게 '무시무시한 러시아'라는 선입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불편함은 러시아를 여행하는 내내 계속되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기차나 도시에서 점점 더 많은 시베리아와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선입견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기차가 잠시 서는 역에 급작스레 만들어지는 시골아낙들의 좌판은,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이야기로는 한번쯤 들었을 예전 우리모습과 너무 흡사했다. 또 도시들의 중심가는 우리나라의 여느 도시 같이 화려한 차림의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독립운동의 성지 하바로프스크에서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기차내의 60여 시간 동안 안드레이씨와 데마씨, 그리고 사샤와 바샤 형제를 만난 일이다.
시베리아 벨라고르스크에서 전기관련 계통의 일을 한다는 안드레이는 수줍음 많은 전형적인 러시아 청년이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인도와 티베트 같은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아제르바이잔 사람인 데마씨는 말로만 들어왔던 카스피 해의 항구도시 바쿠 출신이라고 했다.
둘 모두 러시아어로만 소통이 가능한 탓에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손짓·짓에 그림·숫자까지 사용하는 의사소통만으로도 서로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의사소통법이 통한다는 게 신기했다.
샤사·바샤 형제를 만났을 때는 좀더 자신감이 붙었다. 40대의 전형적인 러시아 아저씨들인 이 형제와 함께 한 시간은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기 전 8시간 정도였다. 시베리아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이들이 영어나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러시아어에 유창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독한 보드카가 한 잔 두 잔 돌면서 어느새 나는 두 형제의 가족사와 직업은 물론 왜 기차를 탔는지, 어디로 가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들도 나의 신상정보를 알아들었고, 내 나라 '카레야(코리아)'의 역사적 비극을 이해했다. 나중엔 서로 주소를 주고받고 다시 만나자는, 너무나 한국 술자리적인 헤어짐도 경험할 수 있었다.
신기하다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이 경험은 내가 갖고 있던 러시아에 대한 편견 한 가지는 충분히 없애주었다. 그 곳은 '이상한' 곳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살고 있는 평범한 곳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말과 언어는 소통을 하는 수단 중 한 가지일 뿐이라는 사실도.
나는 이 곳을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