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평가하는 학생이 강의평가가 익명성이 보장되는지 의심하고 있다.조광민
일단 '의무사항'이라서 로그인을 했다. 어차피 할 것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강의평가 문항을 들여다보자.
강의계획서의 내용은 충실하였는가?
교재와 학습 자료는 적절하였는가?
결강은 없었으며 결강 시 보강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강의평가의 '뻔한' 문항들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약학과 4학년 박영민 학생(21)은 "실험과목 평가에 교재가 적절하였느냐는 질문은 잘 맞지 않다"며 "실험기구들이 잘 갖추어졌는지, 실험시간이 잘 배분되었는지, 실험이 실용적이었는지를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4학년 한 학생(26)은 "7~8명에 가까운 교수들을 상대로 20문항에 가까운 강의평가를 해야 하니 제대로 하려면 2시간 이상 걸린다"며 "강의평가 문항이 중복적이고 불필요한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한 학생(22)은 "강의평가를 안 하면 성적확인을 못하니 귀찮아도 어쩔 수 없이 하긴 한다"며 "가끔씩은 한 줄로 죽 찍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의평가 문항 자체에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제대로 평가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기 일쑤다. 학과와 과목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강의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것.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 한 학생(21)은 "강의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학생이 많아 교수님께 전달되는 강의평가 자료가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의무적인 강의평가제도가 아닌 자발적 참여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적은 수의 학생들만 참여할지라도 오히려 학생들의 의견을 정확히 교수님께 전달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강의평가는 어떻게 쓰일까
2시간을 들여 꼼꼼히 강의평가까지 마쳤다. 그런데 이렇게 평가하면 도대체 뭐가 바뀔까?
학생들은 강의평가에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매학기 같은 교재, 같은 강의, 심지어 농담까지 변하지 않는 교수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
숙명여자대학교 약학과 4학년 박영민(21) 학생은 "몇 년 동안 강의 내용과 강의 방식이 그대로인 교수들이 많다"며 "강의평가가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지 않아 대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각과는 달리 강의평가는 아주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비정규직 교수와 강사들에게만….
정규환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부위원장은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 대부분은 강의평가를 피드백제도로 인식하기보다 성적확인을 위해 거쳐야 하는 귀찮은 절차로 여겨 몰아찍기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며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심드렁한 태도로 또는 막연한 감으로 답을 찍은 결과는 대학 교원들 가운데 오로지 비정규직 교수의 강의박탈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교수들에게 강의평가를 반영하도록 하는 학교도 없지 않다. 대경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바탕으로 교수들 사이의 석차와 4.5만점의 평점평균이 적힌 '강의평가 성적표'를 매학기 받는다.
이 학교 유아교육과 이주하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분발의 계기가 된다"며 "내 강의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고 어떤 부분에서 설득력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 다음 학기 강의 준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교에서 강의평가가 비정규직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순천향대학교 한 정교수는 "정교수의 경우 강의평가 결과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지만 강사의 경우에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밝혔다. 강남대학교 한 강사는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강사들의 다음 학기 재임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수업 다 듣고 강의평가? 후배들 좋은 일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