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 집 경비 서달라고 했어!"

대문 옆에 터 잡은 벌떼 경호원들

등록 2007.08.02 12:31수정 2007.08.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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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바로 옆 무허가 건축물, 벌집
대문 바로 옆 무허가 건축물, 벌집조명자
남의 손 탈만큼 성성한 세간도 없는데 우리 집 대문 옆에 느닷없는 경비실이 생겼다. 그것도 무술 유단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가진 경비원이 떼로 주둔하는 그런 경비실 말이다.


하여튼 부탁하지도 않은 경비원을 그것도 떼 죽으로 만나게 된 것이 며칠 전 일이다. 무심코 대문을 열고 나갔는데 평소보다 많은 벌들이 대문 앞에서 잉잉거리고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집 대문을 장악한 벌떼 경호원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피고 지는 꽃향기 때문에 수시로 벌 나비가 넘나들지만 대문 앞에서 시위를 하는 벌들은 처음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문 근처에다 동네 아이들이 단 것이라도 떨어뜨려 놨는가 세심히 살피고 있는데 집중적으로 몰려다니는 방향이 대문 옆 담장 근처였다.

육각형 벌집 기둥 속엔 아직 꿀이 안 보인다
육각형 벌집 기둥 속엔 아직 꿀이 안 보인다조명자
그래서 올려다봤더니 이를 어쩌나. 기와가 얹어진 담장 아래 제법 커다란 벌집이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재작년에는 지붕 용마루 근처에 둥지를 틀더니만 이번엔 아주 코앞으로 이주를 했으니 이 막가파 무허가 입주민들의 처치가 참으로 난망했다.

무시로 드나드는 대문 옆에서 벌떼가 주둔하고 있으니, 알고 있는 주인이야 조심만 하면 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들이 벌떼 쫓겠다고 손이라도 휘젓다가 공격을 받는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벌집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벌들이 매달려 마치 부채라도 부치듯 앞발을 부지런히 흔들고 있었다. 육각형의 벌집 기둥엔 아직 꿀을 채우진 못한 것 같은데 이것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벌집에 달라붙은 벌들이 일제히 앞발을 발발 떨고 있는데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벌집에 달라붙은 벌들이 일제히 앞발을 발발 떨고 있는데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조명자
벌들은 꿀을 모아놓고 날개로 부채질을 한단다. 묽은 꿀에 부채를 부쳐 수분을 증발시킨 뒤 장기 저장을 하려는 속셈이라는데 가는 앞발을 발발 떨며 정신없이 흔드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벌집 건드리기' 실감 나네

어쨌거나 가까이서 본 벌집과 벌들의 하는 양이 너무 신기해 우선 사진부터 찍기로 했다. 사진 좀 잘 찍고 싶은 욕심에 렌즈를 벌집 코앞에 들이댔는데 아뿔싸! 벌의 공격을 받았다. 카메라 잡은 손가락, 어깨 사정없이 쏘아대는데 완전히 혼비백산이었다.

사진이고, 뭐고 우선 납작 주저앉았다. 벌떼의 공격을 받았을 땐 그 자리에서 장승처럼 꼼짝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덜 쏘인다는 게 상식이다.

"벌떼처럼 달려든다" "벌집을 건드리다" 잘못 건드려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 흔히 회자되는 속담이다.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든가? 속담을 즐겨 쓰면서도 사실 벌떼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가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벌초하다 땅벌에 쏘여 사망했다는 기사를 볼 때면 어떻게 했기에 죽기까지 했을까 의아해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벌떼의 공격을 직접 겪은 적이 있다. 7~8년 전이었을까? 승주 선암사에서 여름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함께 불교공부를 하는 도반들과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무더운 오후에는 기도하기 어려우니까 주변에 있는 암자를 순례한다.

그날은 선암사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앞산에 있는 '남암' 폐사지를 참배하기로 했다. 길도 제대로 없는 풀숲 길을 헤치고 남암 터를 찾아갔을 때 마치 사냥꾼들의 움막처럼 생긴 허술한 거처가 폐가처럼 비스듬히 서 있었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기도를 했던 자리라고 했다. 지금은 무성한 풀숲에 덮여 옹색하게 보이지만 그 옛날엔 상당히 큰 가람도 문제없이 자리할 만큼 터가 넓었다. 허름한 움막 옆으로 작은 초막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공양간 터였던 모양이다.

초막 안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옹달샘. 옆에 조롱박까지 엎어져 있는 옹달샘 바닥에서는 물방울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땀 뻘뻘 흘리며 찾아온 폐사지에서 만난 시원한 옹달샘, 그야말로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오아시스와 다름없는 환희였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땀에 밴 목덜미도 훔치면서 법사님께서 설명하시는 '남암'의 역사를 듣고 있는데 우리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벌들이 웽웽거리며 배회하기 시작했다. 공부고 뭐고, 그때부터 보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벌떼의 습격, 튀어봤자 별수 없다!

보살들이 무서워하니까 얼떨결에 곁에 있는 거사 한 분이 모자를 벗어 벌떼를 쫓은 것이 화근이었다. 조금 있다 보니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벌떼가 새까맣게 모여 쳐들어오는데 이건 사단병력 찜 쪄먹는 규모였다.

여기저기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으로도 벌떼들이 웽웽거리며 위협을 하는데 그 순간 너무나 공포에 질려 도망은커녕 한 발자국도 떼놓을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린 한 언니가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발자국 못 가다 언니가 머리를 감싸고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더니 어린애처럼 큰 소리로 "아파, 아파" 소리를 지르며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다 된 언니가 계집애처럼 발버둥을 치며 우는 모습을 보자 무섬증이고 뭐고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서 있는데 이번엔 다음 보살이 뛰는 것이었다. 앞서 쓰러진 도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우선 도망가야한다는 본능에 무작정 뛰고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몇 발자국 못 가서 그 보살도 쓰러졌다.

머리고, 등이고 벌침이 무차별로 꽂혔다. 두번째 보살은 마치 발작을 일으키듯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데 그러다가 꼭 죽을 것 같았다. 두번째 보살의 모습을 보며 그때부터 웃음이고 뭐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벌들이 내 옷깃을 스치며 무섭게 도는 모습을 보니 내가 꼭 어떤 통 속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그날 기어코 119가 동원됐다. 심하게 쏘인 보살 두 분과 조금 덜 쏘인 세 사람이 병원에 실려가 해독제를 맞았는데 그 병원 의사가 며칠 전에도 한 사람이 벌에 쏘여 사망했다고 이야기하며 혀를 차더란다.

금꿩의 다리, 최고의 밀원이다
금꿩의 다리, 최고의 밀원이다조명자

벌이랑 그냥 어울려 살자고?

그때 그 일을 겪고 나서 벌만 보면 오금부터 저리다. 몇 년 전엔 아는 목사님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양반이 산나물을 꺾으러 산등성을 오르려다 벌떼의 습격을 받았단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는데 목사님 따라 쫄랑쫄랑 따라오던 강아지가 대신 습격을 받은 것이었다.

벌에 쏘인 강아지가 "깨갱 깨갱~" 하며 비명을 지르기에 저놈이 죽는가 보다 했더니 한 5분 후 탈탈 털고 일어나더란다. 그래서 사람보다 강아지가 강하구나 했는데 웬 걸. 다음 날 보니 강아지 얼굴이 두 얼굴의 사나이가 아닌 '두 얼굴의 강아지'가 됐다나.

벌에 쏘인 한쪽 볼이 어찌나 부어올랐던지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지만 정말로 벌에 쏘여 목숨까지 잃는다는 사실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체험을 했기 때문에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저러나 우리 집 대문 옆 벌집은 어떻게 해야 하나? 벌집 제거를 위해 119를 부른다지만 긴급구호를 요청할 만큼 벌집이 크지도 않으니 신고하자니 미안스럽기만 하다. 분사가 되는 모기약도 크게 효과가 없다 하니 완전무장을 하고 벌집을 떼어낼 수밖에 없는데 이건 위험부담이 너무나 크다.

벌집을 발견한 뒤 남편한테 어떻게 해결 좀 해달라고 징징거렸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아, 벌집을 왜 떼려고 해? 벌은 건들지만 않으면 공격을 안 하는데, 같이 어울려 살아야지" 이런다.

작년 여름 마당에 나타난 뱀을 보고 기겁을 하는 내게 "뱀이 우리보다 먼저 이 터에 자리잡았을지도 모르니까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하더니 이 인간은 내 인생에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하여튼 나는 지금 벌한테 납작 엎드려 사는데 수시로 드나드는 객들이 문제다. 조만간 남의 서방을 빌려서라도 어떻게 해결은 해야 할 텐데 무거운 머리가 태산이다. 지네에, 뱀에, 벌까지 참말 가지가지 한다. 언제 우리 집 경비 서달라고 부탁했나? 왜 떼로 몰려와서 경비실까지 짓고 야단이야.
#벌집 #벌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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