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에 달라붙은 벌들이 일제히 앞발을 발발 떨고 있는데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조명자
벌들은 꿀을 모아놓고 날개로 부채질을 한단다. 묽은 꿀에 부채를 부쳐 수분을 증발시킨 뒤 장기 저장을 하려는 속셈이라는데 가는 앞발을 발발 떨며 정신없이 흔드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벌집 건드리기' 실감 나네
어쨌거나 가까이서 본 벌집과 벌들의 하는 양이 너무 신기해 우선 사진부터 찍기로 했다. 사진 좀 잘 찍고 싶은 욕심에 렌즈를 벌집 코앞에 들이댔는데 아뿔싸! 벌의 공격을 받았다. 카메라 잡은 손가락, 어깨 사정없이 쏘아대는데 완전히 혼비백산이었다.
사진이고, 뭐고 우선 납작 주저앉았다. 벌떼의 공격을 받았을 땐 그 자리에서 장승처럼 꼼짝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덜 쏘인다는 게 상식이다.
"벌떼처럼 달려든다" "벌집을 건드리다" 잘못 건드려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 흔히 회자되는 속담이다.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든가? 속담을 즐겨 쓰면서도 사실 벌떼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가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벌초하다 땅벌에 쏘여 사망했다는 기사를 볼 때면 어떻게 했기에 죽기까지 했을까 의아해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벌떼의 공격을 직접 겪은 적이 있다. 7~8년 전이었을까? 승주 선암사에서 여름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함께 불교공부를 하는 도반들과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무더운 오후에는 기도하기 어려우니까 주변에 있는 암자를 순례한다.
그날은 선암사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앞산에 있는 '남암' 폐사지를 참배하기로 했다. 길도 제대로 없는 풀숲 길을 헤치고 남암 터를 찾아갔을 때 마치 사냥꾼들의 움막처럼 생긴 허술한 거처가 폐가처럼 비스듬히 서 있었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기도를 했던 자리라고 했다. 지금은 무성한 풀숲에 덮여 옹색하게 보이지만 그 옛날엔 상당히 큰 가람도 문제없이 자리할 만큼 터가 넓었다. 허름한 움막 옆으로 작은 초막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공양간 터였던 모양이다.
초막 안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옹달샘. 옆에 조롱박까지 엎어져 있는 옹달샘 바닥에서는 물방울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땀 뻘뻘 흘리며 찾아온 폐사지에서 만난 시원한 옹달샘, 그야말로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오아시스와 다름없는 환희였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땀에 밴 목덜미도 훔치면서 법사님께서 설명하시는 '남암'의 역사를 듣고 있는데 우리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벌들이 웽웽거리며 배회하기 시작했다. 공부고 뭐고, 그때부터 보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벌떼의 습격, 튀어봤자 별수 없다!
보살들이 무서워하니까 얼떨결에 곁에 있는 거사 한 분이 모자를 벗어 벌떼를 쫓은 것이 화근이었다. 조금 있다 보니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벌떼가 새까맣게 모여 쳐들어오는데 이건 사단병력 찜 쪄먹는 규모였다.
여기저기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으로도 벌떼들이 웽웽거리며 위협을 하는데 그 순간 너무나 공포에 질려 도망은커녕 한 발자국도 떼놓을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린 한 언니가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발자국 못 가다 언니가 머리를 감싸고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더니 어린애처럼 큰 소리로 "아파, 아파" 소리를 지르며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다 된 언니가 계집애처럼 발버둥을 치며 우는 모습을 보자 무섬증이고 뭐고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서 있는데 이번엔 다음 보살이 뛰는 것이었다. 앞서 쓰러진 도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우선 도망가야한다는 본능에 무작정 뛰고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몇 발자국 못 가서 그 보살도 쓰러졌다.
머리고, 등이고 벌침이 무차별로 꽂혔다. 두번째 보살은 마치 발작을 일으키듯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데 그러다가 꼭 죽을 것 같았다. 두번째 보살의 모습을 보며 그때부터 웃음이고 뭐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벌들이 내 옷깃을 스치며 무섭게 도는 모습을 보니 내가 꼭 어떤 통 속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그날 기어코 119가 동원됐다. 심하게 쏘인 보살 두 분과 조금 덜 쏘인 세 사람이 병원에 실려가 해독제를 맞았는데 그 병원 의사가 며칠 전에도 한 사람이 벌에 쏘여 사망했다고 이야기하며 혀를 차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