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 뒷부분 모터에 붙어 있는 바코드 스티커. 이 바코드 스티커로 인해 결국 진실한 답변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조광선
A/S 기사가 돌아가고 난 지 3시간 만에 결국 성에는 녹아버렸고 냉기는 없어졌다. 다시 고장 상태로 냉장고가 아닌 온장고가 되어버렸다. 나는 만일을 위해서 문제의 모터를 일렬번호가 새겨져 있는 바코드부분 위주로 사진을 찍어 놓았다.
4일 후 또다시 모터를 교체하기 위해서 A/S 기사가 도착했다. 나는 모터부터 확인했다. 이번 것은 얼핏 봐도 새 것 같아 보였다. 잠시 후 붙어 있던 작동불능의 원인이었던 모터를 뜯어내자 A/S 기사가 가져온 새 모터와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중고모터로 의심이 가는 모터는 한 눈에 보기에도 인쇄상태, 라벨상태가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A/S 기사에게 "지난번 가져오신 것이 중고모터가 맞네요"하자 "아이참~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하며 작업을 계속했다.
작업이 끝난 후 나는 A/S 기사와 함께 같이 짐을 들어주며 A/S 기사가 타고 온 차량이 주차돼 있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갔다. A/S 기사에게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물어보면 집사람과 아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진실한 답을 받아내기는 어렵거니와 분위기가 너무 싸늘할까 염려해서였다.
둘만의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지난번 모터 중고 맞죠?"
"아닙니다."
"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중고임이 확인이 되는데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솔직히 말씀하세요."
"뭘 솔직히 말씀을 하라고 하시는 건지…."
"정말, 새 모터가 맞단 말씀이세요? 그럼 제가 혹시 애먼 사람 의심할 수도 있으니 본사에 전화해 딱 한 가지만 확인해 볼게요, 그러면 기사님이 거짓말하시는지 내가 의심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뭘 확인해 보시려고요?"
"모터 바코드 숫자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럼 출고일을 알 수 있겠죠?"
"예 그렇게 하세요" 하고는 A/S 기사는 떠났다.
A/S 기사의 고해성사, 그러나
그런데 이날도 결국 수리한 지 몇 시간 후 냉장 냉기가 떨어졌다. 다음날 나는 출근해서 회의를 마치고 W사 D브랜드 김치냉장고 홈페이지를 뒤적이며 고객상담실 전화번호를 찾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저~ 어제 수리한 A/S 기사입니다."
집으로 전화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 예~ 웬일이세요?"
"양해를 좀 구할 것이 있어서요."
"양해요?"
"사실은 그 모터 동료 기사에게서 받은 거였는데 동료에게 확인을 해보니 쓰던 중고라고 하더라구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뻔한 사실을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나는 일단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고해성사를 받은 신부님의 기분이 이런 심정일까?
'고객을 속인 A/S 기사의 고백' 이를 어찌할까?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다가 집에 가서 집사람과 상의했다. 우리가 가만 있으면 또 다른 고객이 이런 똑같은 피해를 볼 것이고, 이 일을 알리면 젊은 사람의 앞길이 우리의 말 한 마디로 꺾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건 또 아니고. 그러다 일단 수리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그 이후에 판단하자고 했다.
그 일이 있은 이틀 후 A/S 기사는 방문해서 재수리를 했으나 역시 냉장이 안됐다. "드라이아이스를 갈아보자"고도 했고 "이번에도 안되면 가져가서 고쳐와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또 이틀 후 이번에는 팀장과 함께 방문해 재수리했으나 역시 냉장이 안 됐다. 결국 사흘 후 팀장이 와서 수리센터로 김치냉장고를 수리하러 가져가는 중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아내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노이로제에 걸렸어, 미칠 것 같아"고 했다. 이제 냉·온을 반복하던 김치냉장고 속에 있던 김치는 김치찌개나 해야 할 만큼 쉬어 꼬부라져 버렸다.
6번만에 수리 완료... 다시 뒤바뀐 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