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다 발견된 거북이. 캐나다 시골에서 거북이, 도마뱀, 토끼, 다람쥐 등등 적지 않은 야생 동물을 볼 수 있었다.문종성
"이봐요, 당신 거기에 텐트 칠거예요?"
'이크, 주인인가 보군. 좀 봐주지 그래. 깐깐하긴.'
북미쪽 사람들은 사유지에서의 낯선 사람 출입을 상당히 경계한다. 그래서 텐트를 칠 때도 늘 허락을 맡거나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잘 분석해야 한다.
오후 5시 경부터 숙소를 찾으러 다녔다. 하루의 일과 중 늘 기계처럼 반복해야 하는 일이 숙소 찾기이다보니 이제 어느 정도 마인드 컨트롤이 된다. '정 안 되면 들판에다 텐트나 치지 뭐'하는 낙천적인 생각 같은 거 말이다. 오랜만에 숲 속에 펜션 같은 괜찮은 캠핑장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피로도 풀 겸 이용하러 갔는데 이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길을 물어보면 사람들은 계속 '5마일만 더'를 외친다. 슬슬 귀찮아지고 어느 순간 CAD $25도 부담되어 한 시간이 넘은 캠핑장 찾기를 중도에 포기했다. 그냥 중간에 오면서 보았던 빈 집들을 많이 봤는데 그곳의 야드에 텐트 치려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사람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제법 괜찮은 야드를 발견해냈다. 그래서 오늘 숙소를 여기에 마련하려고 자전거를 세우고 텐트를 내리려는 찰나 그 때 누군가 나를 부른 것이다. 도로와 야드 사이에는 나무들이 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없었지만 그는 내가 자전거와 함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하룻밤 자 보겠다고 여기에 온 이상 정중히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네, 오늘 잘 곳이 마땅찮아 여기서 하룻밤만 자고 가려구요. 여기 주인이세요?"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주인은 무슨 주인? 난 다른 곳에 살아요. 괜찮으면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은 망설일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미 난 그의 곁으로 가 있었다.
"내 이름은 폴(Paul)이에요. 사과농장을 경영하고 있죠. 자전거 여행 하나 봐요?"
"네, 전 갈렙이구요. 북미 대륙 횡단 중이에요. 근데 어떻게 제가 저기 있는지 알았어요?"
"아, 차타고 오면서 보니까 웬 자전거 여행자가 야드 쪽으로 자전거를 밀고 들어가는 모습을 봤거든요."
그는 내가 무거운 자전거를 밀고 야드로 들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짧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차 안에서 나를 본 시간과 차의 속력을 고려하면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이런 판단을 한 거라면 매우 사려 깊고 신중하게 판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습관이나 혹은 성격에 의해 결정했을 소지가 크다. 결론은 그가 나를 배려해 준 것은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온 선수(善手)가 아니라 원래 그의 인격이 자비롭거나 마인드가 열려 있다는 얘기라고 귀결할 수 있다.
바다같이 넓은 온타리오 호수
사실 지금까지 베풀어 준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결코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오래 고민하는 사람들 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유익을 고려해 판단하기 위해 머리를 좀 더 굴리는 것뿐이다. 그냥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사람들을 보면 친절이 습관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복잡다단한 것도 정말 별 문제 아니라는 듯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말을 늘어놓고 행동이 부산한 사람일수록 결과는 좋지 않았음을 상기하면 적어도 내 경우엔 '장고 끝에 악수(惡手)'가 나오는 것이 확실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