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는 모습고기복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시는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연세를 여쭙기도 하고 고향이 어디신지 묻기도 하다가, 사진을 찍고 방으로 들어가던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에 호기가 느껴졌습니다.
"아따, 나가 저 나이면 사진 안 찍어. 왜 찍어."
"어르신은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나? 여든."
그런데 옆에서 듣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끼어들었습니다.
"여든이여?"
"아니, 여든넷인가? 여덟인가? 그쯤 되어. 나이 솔찮이 먹었어."
"아, 왜 나이가 왔다 갔다 해."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는 나이를 시비 거는 할머니 말씀에 콧방귀도 뀌지 않으시고 "저 양반, 이자 칠십 조금 넘었지" 하며 웃으시더군요. 할머니 말씀이 아니더라도 '요양원 내의 어르신들의 평균 연령이 여든 정도 된다'는 복지과장님의 귀띔이 있었던지라, 일흔은 젊은 축에 속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어르신의 입을 통해 듣고 보니 더욱 실감이 났습니다.
오전에 내리던 비가 막 그쳐 덥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은 좋은 날씨 속에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어르신 한 분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기 위해 둘러선 사람들은 마치 영화를 찍는 것처럼 신이 났었고, 그것을 보는 어르신들도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손자뻘 되는 피부색 다른 청년들의 서툰 우리말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어디 가면 쉽게 듣게 되는 질문인 '어느 나라에서 왔소'라고 묻는 분이 한 분도 계시지 않았고,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이 사진을 찍으러 온 청년들을 어찌 그리 애틋하게 보시는지, 마치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사이들처럼 보였습니다.
사진 촬영했던 이주노동자들 역시 살아 있다면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고향에 두고 온 청년들이고 보면, 어르신들에게 정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달라도 사는 이치는 같다'고 했던가요? 부모형제, 친지가 그리운 것은 고향 떠난 이의 한결같은 마음이겠지요.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꾸르는 비록 자신이 찍지 않았지만, 사진이 잘 나오기를 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고 돌아오던 길, 요양원 뜰에 있던 연꽃의 싱그러움 같은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뒤로 들렸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