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빈 멘지스의 책 <1421> 표지를 찍은 사진.김성호
멘지스는 <강리도> 이전에 유럽에는 아프리카 지도를 그린 것이 남아 있지 않으며, 그 이후 유럽에서 나온 초기 세계지도는 정화 함대가 탐험한 지도를 베끼거나 짜깁기 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정화 함대가 최초로 세계 일주를 했다는 주장의 근거인 셈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 이회가 그린 <강리도> 자체가 자신의 탐험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여러 지도들을 종합해서 그린 것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강리도>의 참고가 되었을 중국의 아프리카 지역이 포함된 세계지도도 정화의 탐험 결과가 아니라 이미 유럽이나 서아시아, 인도 쪽에서 나온 지도를 짜깁기 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 중국의 아프리카 지도를 베낀 것이 아니라, 거꾸로 중국이 유럽의 것을 베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정화의 대항해 이전에 이미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는 1273년 중국을 방문해 17년간 머물렀고, 모로코의 이슬람 여행가 이븐 바투타도 1345년 중국에 도착했다.
이들 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동서간에는 많은 교류가 있어 왔기 때문에 서로의 지도도 이미 소통되었다고 봐야한다. 역사학자들도 유럽과 중국에서 세계지도를 만들 때 상대의 것을 서로 베끼거나 짜깁기해서 종합적으로 그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멘지스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 명나라 때의 대항해에 대한 상상력과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탐정소설 읽듯이 여행하면서 읽기에는 재미난 책이었다.
아프리카 해안의 다우선과 중국 정크선의 만남
어떻든 중국이 아프리카까지 진출함으로써 나무로 만든 돛배(목조 범선)인 정크(Junk)선 무역과 이슬람의 낮고 큰 삼각돛을 단 다우(Dhow)선 무역이 인도양을 고리로 하여 연결되었다. 동서를 잇는 '바닷길'이 연결된 것이다. 이 바닷길은 도자기를 주로 수출했다하여 '도자기의 길(Ceramic Road)'이라 불렸다.
13~14세기 몽골제국 시대의 동로마 제국 비잔틴제국과 중앙아시아 및 몽골의 초원길을 거쳐 원나라의 베이징까지 연결되는 이른바 '초원의 길(Steppe Road, 또는 은의 길(Silver Road))'과 오래전부터 지중해를 거쳐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를 거쳐 당나라의 장안(시안)을 연결하던 '실크로드(Silk Road, 비단길)'에 이어 '바닷길'이 열림으로써 바다와 육로의 사막지대, 초원지대가 모두 동서양으로 연결되었다.
다우선과 정크선의 만남. 아프리카와 아랍의 인도양을 대표하던 다우선과 동아시아의 태평양을 대표하던 정크선의 만남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물과 문명의 본격적인 교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삼각형의 세로돛을 단 다우선과 여러 개의 사다리꼴 세로돛을 단 정크선은 자신들이 싣고 온 '상아와 향신료' 와 '도자기와 비단'을 맞바꾸었다. 계절에 따라 규칙적으로 불어오는 인도양의 계절풍(Monsoon)이 다우선과 정크선의 운항에 도움을 주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기린그림 속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류역사가 담겨 있다. 기린그림 옆에는 물병과 접시 등 중국 명나라 때의 청자 도자기가 중국과의 교역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아프리카 여행 중 중국의 도자기는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융성했던 짐바브웨 쇼나 부족의 그레이트 짐바브웨 돌 유적지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정화 함대의 대항해 무렵에 활발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류를 보여준다. 아프리카와 중국의 교역에서는 중간에서 아랍 상인들이 중요한 중개역할을 했다.
기린그림 옆에는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 동아프리카 무역투르'라는 제목의 도표가 서기 1000~1300년 사이 인도양을 둘러싼 아프리카와 아랍, 아시아사이의 주요 수출품과 무역항을 설명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리처드 버튼, 존 해닝 스피크, 스탠리 등 탐험가와 한스 마이어 등 등산가들의 탐험활동 등에 대한 설명과 탐험 기구 등도 전시해놓았다.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리빙스턴이 사용하던 나무상자 가방이었다.
리빙스턴은 “1873년 잠비아의 방궤울루 호수(Lake Bangweulu) 남쪽 치탐보(Chitambo)에서 사망했다”며 설명하고 그의 시신을 바가모요까지 옮긴 충성스런 아프리카인 신하였던 추마(Chuma)와 수시(Susi)의 사진도 전시해놓고 있었다.
2충 전시관을 구경하는 데, 탄자니아 초등학생 50여명이 교사의 인솔로 박물관 구경을 와서 신기한 듯 열심히 보고 있었다. 이 전시관에서는 또한 니에레레 대통령에게 주민들이 선물한 사자의 박제품도 볼 수 있다.
1층 전시관으로 내려오자 중앙에 오래된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영국 식민지 시대에 총독이 타다 독립 후에는 니에레레 대통령이 사용했다고 한다.
인류역사관인 1층은 올두바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과 같은 1959년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와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 모형 등을 전시해 놓았고, 인류의 진화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놓았다. 역사관에서는 "현재 1천1백만 년~5백만 년 전 사이에 '커다란 잃어버린 고리(Big Missing Link)'가 존재하고 있다"며 인류 진화과정의 지속적인 연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3억 5천만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살아있는 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