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 중 탈레반 무장세력에 피랍돼 피살된 고 배형규 목사의 부인 김희연씨와 형 배신규씨가 27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에 마련된 피랍가족대채위원회 사무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피랍자 석방을 촉구하는 유가족의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4신 : 27일 저녁 8시 20분]
배형규 목사 가족들 "더이상 희생자 만들지 말기를"
고 배형규 목사의 부인 김희연(36)씨의 얼굴은 창백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손이 떨렸고, 결국 그는 호소문의 제목도 다 읽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피랍자 석방을 촉구하는…(울음)…고 배형규 목사 유가족의 호소문…."
김희연씨는 27일 오후 6시 10분께 경기도 분당구 정자동 피랍가족 대책본부 사무실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채 기자들을 만나 호소문을 발표했다.
김씨는 이날 호소문에서 "피랍자 가족들이 이미 충분히 겪고 있는 고통이 더 이상의 슬픔으로 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번 사태의 희생자는 제 남편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고 힘겹게 말했다.
이어 "죽은 내 남편도 남아있는 22명의 피랍자들이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계속적인 노력과 미국·아프간 정부의 협력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호소문 낭독을 마쳤다.
곧이어 기자들이 심경을 물었지만, 김씨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꽉 다물었다. 조금 뒤에 그는 "믿기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만났으면 좋겠다"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김씨는 9살 난 딸에게 "아빠가 생일날에 가장 큰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남편의 죽음을 설명했다고 했다.
"아빠는 생일날에 큰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 갔단다"
배 목사의 형 배신규(45)씨도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간신히 말을 이어나가는 제수 김희연씨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배씨는 호소문 낭독이 끝나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쳐냈다. 함께 자리한 친지 3명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
배신규씨는 기자들에게 고인의 성격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동생은 남들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가 형이지만 집에 일이 있을 때 동생에게 항상 물어보고 일을 결정할 정도로 생각이 깊었다…(울음)…동생 말대로 일을 처리하면 마음이 놓였다. 제가 더 많이 의지했다."
또한 배씨는 "첫번째 희생자의 유족으로서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나서게 됐다"며 "희생은 내 동생으로 족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호소문 발표 경위를 설명했다.
배씨는 고인과 관련된 보도들 중 잘못된 사실 몇 개를 정정하기도 했다. 그는 "동생의 폐질환은 심각한 것이 아니라 2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 깨끗이 낫는 병이었다"며 "깨끗이 치유됐고 가족들도 걱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일부 언론이 보도와 달리 배 목사가 쌍용그룹에서 장학금을 받고 3년간 근무한 것이 아니라 효성그룹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효성그룹에서 1년간 근무한 것이라고 정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뒤 김씨는 지인의 집에 머물렀으며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배 목사의 부모도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 |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했는데" | | | [인터뷰] 피랍자 이영경씨의 아버지 이창진씨 | | | | 27일 오후 6시 피랍자 이영경씨의 아버지 이창진(51)씨가 피랍가족대책본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씨는 충혈된 눈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현재의 심경을 물었다.
- 지난 20일 피랍 이후 일부 네티즌들이 악플을 달고 있다. 피랍가족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영경이에게 악플이 달릴 이유가 없다. 영경이는 누가 봐도 착하다고 할 만큼 선한 아이다. 피랍자에 대한 보도에 대해 악플이 달리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그래서 일부러 보지 않고 있다."
- 영경씨의 평소 건강은 어땠나. "빈혈이 있다고 들었다. 나도 나중에 알게됐다. 정부에서 피랍자들에게 의약품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아직 도착할 지 안 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확실히 믿고 있지 않다."
- 평소 영경씨의 생활은 어땠나. "영경이는 생일날 와인 한잔을 줘도 입만 대고 마시지 않는 아이다. 집에 친구들도 자주 놀러왔다. 와서 자고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주로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인형 갖고 지내는 것도 좋아했다. 아이들을 매우 좋아해서 대학 전공도 유아교육과를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무슨 뜻이 있었는지 영문과를 선택했다.
영경이가 작년에는 방학을 이용해 인도에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이쁘다고 했다. 그러나 그 곳 아이들이 자주 씻지 못해 매우 안타까워했었다. 이번에도 어려운 아이들을 돌봐주고 챙겨주기 위해 나간다고 해서 봉사활동을 허락했다."
- 자주 담배를 피우시는 것 같은데. "피랍된 소식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가 많이 늘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에 더 답답하다. 그냥 지켜보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나." | | | | |
[3신 : 27일 오후 5시 50분]
임현주씨 오빠 "미국이 지원해달라... 동생 자랑스러워"
임현주씨 오빠 임철(34)씨는 오후 5시께 분당 정자동 피랍가족대책본부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동생을 비롯한 인질 22명이 무사귀환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크다"면서 "미국과 여러 국가들도 인질 석방을 위해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임철씨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려운 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한 이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탈레반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봉사단원들의 아프가니스탄 사랑에 대한 소식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이날 뉴스에서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진지하고 차분하고 냉정한 말투가 똑같아 동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고 밝혔다. 그는 "동생은 아프가니스탄 생활이 불편하지 않고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하며 "현지 기후나 음식에도 문제없이 적응했다"고 말했다.
동생 현주씨의 아프간 봉사활동에 대해서는 "동생은 아프가니스탄을 항상 도와주야 하다고 이야기했다, 외동딸이라서 부모님의 반대가 컸지만 결국 설득하고 봉사활동을 떠났다"며 "그런 결정에 대해서는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날 부인과 함께 대구에서 대책본부로 온 임철씨는 인터뷰 중에 "안심했다, 동생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반복하며 안도감을 내비쳤다. 어쨌든 동생의 안전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현재 임씨의 가족 중에서는 임철씨만 대책본부에 나와있다.
다음은 임철씨와의 일문일답.
- 처음 동생 목소리를 들은 것이 언제인가? 어떻게 바로 알아챘는지 심경은 어땠는지?
"뉴스를 보다가 잠시 쉬는 중이었다. 쉬는 중에 교회 관계자에게 전화가 왔다. 여동생의 목소리를 확인해보라고 하더라. 방송을 확인하고 어투가 똑같아 동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동생의 성격은 털털하고 씩씩하지만 말은 항상 진지하게 한다. 진지하고 차분하고 냉정한 말투…. 동생의 말투다.
(목소리를 듣고) 우선 동생의 생존이 확인돼 안도감이 생겼다. 물론 떨리는 목소리 같이 들렸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침착한 것 같아 다행이다."
- 사실 동생분의 음성이 떨리기도 하고 말이 빨라지기도 했다. 탈레반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곁에 있던 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 동생이 침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동생은 열악한 상황속에서도 침착함을 항상 유지했었다.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목소리가 떨린다고 느껴진 것은 방송에서 나온 음질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음량도 낮았고."
- 동생은 건강한 편이었나?
"건강한 편이었다."
- 애초에 9월 초에 아프간 입국할 예정이었는데 샘물교회봉사단 인솔 문제로 일찍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소녀에게 의수를 달아주기 위해 6월에 귀국했다. 그리고 9월 초에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할 예정이었지만 봉사단 인솔을 위해서 일찍 출국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항상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런 결정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3년 전 동생이 처음 아프가니스탄에 갈 때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다. 3남1녀 중 외동딸이라 부모님이 안타까워하고 만류했다. 하지만 동생의 의지가 커서 결국 부모님을 설득했다."
- 귀국했을 때 동생과 나눈 이야기 나누었나?
"아프가니스탄의 소녀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너무 불쌍했다. 동생은 아프가니스탄에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고 항상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아프간 치안 상황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나?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안전했다고 들었다. 동생이 '외신은 준전시상황고 불안하다고 보도하지만, 생활하기에 불편이 없고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현지의 기후나 음식 적응 문제는?
"3년 전은 힘들었지만 기후나 음식같은 것도 문제없이 적응했다."
- 동생이 피랍됐다는 것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금요일 오후에 인터넷을 통해 한국인 피랍 소식을 들었다. 현지인 3명도 피랍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감적으로 동생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저녁에 교회에 연락해 확실히 알게됐다."
- 동생의 육성이 공개된 것은 협상을 위한 심리전이라는 주장이 있다.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 같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 동생이 원래 케어(배려)를 잘 한다. 어떻게 보면 동생이 현지에 적응했기 때문에 봉사단원들을 돌보고 있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동생분이나 탈레반 그리고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악플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무모했다고 비판도 나오는데 동생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사랑이 컸다. 그런 동생이 자랑스럽다.
피랍된 22명 한분도 빠짐없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무사귀환했으면 좋겠다. 국민 여러분들이 염려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부도 특사까지 파견했다고 하는데 적극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것 같아 고맙다.
아프가니스탄을 사랑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어려운 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한 이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탈레반이 이해되지 않는다. 봉사단원들의 아프가니스탄 사랑에 대한 소식을 알았으면 좋겠다.
한 가지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미국과 여러 국가들도 인질 석방을 위해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동생을 비롯한 인질 22명이 무사귀환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