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을 피우고 떠난 사람

고 권정생 선생님 동화에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등록 2007.07.27 11:01수정 2007.07.27 11:01
0
원고료로 응원
초등학교 6학년 아들에게 '인권'이 뭐냐고 물었다. 흥미로운 답이 돌아왔다.

"친구들 왕따 시키면 안 되는 거요."


이 아이가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서툴지만 그 뜻은 분명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동화 <내 짝꿍 최영대>를 보고 나서 그렇게 느꼈어요."

실제 어디까지가 인간다운 삶이고, 무엇이 인권인지 설명하자면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아들이 정의하고 있는 방식도 하나의 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 남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남을 자신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생각….

물론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두 처한 사정이 다르고, 가진 것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충돌하고, 급기야 싸움으로, 전쟁으로까지 확대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언뜻 떠오르는 분이 있다.

'더불어 사는 삶' 몸소 실천했던 권정생 선생


<강아지똥> 겉그림
<강아지똥> 겉그림길벗어린이
지난 5월 17일 세상을 떠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실천으로 보여줬던 분이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가 각각 60여만 부나 팔리는 성공을 거뒀지만, 그는 7평 남짓한 작은 오두막집에서 혼자 극빈의 삶을 살았다.

그는 평소 '우리가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하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다'(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중에서)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05년 발표한 시에서 그는 '70년을 살았지만 아직 양복, 넥타이, 돈가스, 피자는 가까이 해보지 못했다'고 했을 정도였다. 30촉 전구를 단 방이 어두우면 천정과 벽에 반사용 은박지를 붙여 방안이 환해지게 하고 살았다. 깨진 도자기 베개를 주워 붙여 사용하고, 텔레비전도 없이 살았다. 그러면서도 북한 어린이 돕기에 5000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끼며 모은 돈을 모두 어린이를 위해 남겼다.

19살 때부터 병을 앓기 시작한 뒤 평생 오줌통을 달고 살아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날카롭고, 아름다운 글을 써왔다. 미화된 이야기가 아닌, 리얼리즘에 뿌리를 두면서도 낙관적인 세계관을 담은 이야기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동심의 세계를 심어준 작가였다.

한 마디 한 마디 가슴을 때린 권 선생의 말

창비
1969년 월간 <기독교 교육>에 발표한 단편 동화 <강아지똥>은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던 강아지똥이 자신의 몸을 녹여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서도 인기가 높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서평을 보면 수많은 어른들이 그의 글에서 감동을 느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래선지 죽은 뒤 한 달이 지나서까지 그가 살던 경북 안동시 일직면 오두막집에는 분향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 오두막집은, 헐어달라는 고인의 뜻을 존중해서 없애야 한다는 쪽과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으나 보존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으로 그 집을 찾았던 때는 1997년 10월. 작고한 전우익 선생, 사진기자가 함께 갔다. 그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에 기자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전 선생을 졸라 나중에 양해를 구하기로 하고 서울의 중학교 선생인 척하며 찾아갔다. 그런데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때렸다.

"요즘엔 뒤돌아보는 사람들이 적어요. 자꾸 앞만 보고 살아가요. 경쟁사회니까. 미래를 준비하자면 과거를 제대로 돌이켜보아야 하니더."
"요새 아이들은 말을 잘 안 듣잖아요. 그저 칭찬 많이 해주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풍요로운 삶이란 새 한 마리까지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인간들끼리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건 더럽고 부끄러운 삶이니더."

"인간 성자처럼 살았던 이"

길벗어린이
내내 우스개 소리로 어색한 자리를 편안하게 만들던 전 선생은 돌아오는 길에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권 선생님은 크게 세 가지 특성이 있니더. 첫째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는 사람이시더. 산처럼 바위처럼. 둘째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아주 가난하게 살아요. 덜 먹고 덜 쓰고 덜 입어야 죄 짓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셋째 무서울 게 없는 세상이라고들 하는데 그 분은 무서워할 줄 아는 분이시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조차 벽에 붙이지 못해요. 어머니 앞에서 쌀밥을 먹는 게 죄라고 생각할 정도로."

권 선생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간 성자처럼 살았던 이"(아동문학가 김경희씨)다. 그래서 그의 글은 큰 울림이 있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하나의 놀라운 경험이 된다. <몽실언니> <강아지똥>처럼 널리 알려진 동화 외에도 그의 작품은 많다. 100편이 훨씬 넘는다.

어떤 동화든 그의 책을 펴든 순간 아이들은 저절로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인권 감수성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황소 아저씨> <비나리 달이네 집> <오소리네 집 꽃밭>을 추천한다. 그 외 다른 작가의 <딱친구 강만기>와 <내 짝꿍 최영대>도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 인권 동화다.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 인권동화

<강아지똥> : 권정생 글·정승각 그림
돌이네 흰둥이가 골목길 담 구석진 곳에 똥을 눴다. 세상 사람들은 강아지똥을 보고 더럽다며 피해간다. 지나가는 새들까지 먹을 게 하나도 없다며 천대한다. 그런데 강아지똥은 자기보다 더 못난 흙덩이를 보고 마음이 바뀌고, 비오는 날 싹을 틔운 민들레를 통해 희망을 발견한다.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거름이 되기로 결심한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존재일지라도 나름대로 다 쓸모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이야기다. 4세 이상.

<황소 아저씨> : 권정생 글·정승각 그림
추운 겨울밤 황소 아저씨와 새앙쥐 남매들이 나누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새앙쥐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네 동생을 먹이기 위해 외양간을 기웃거린다. 황소 아저씨는 이 딱한 사정을 듣고 구유에 남은 음식을 선뜻 내준다. 그러다 마침내 따뜻한 외양간에 모여 술래잡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같이 산다는 이야기이다. 황소아저씨가 새앙쥐들에게 "구유 안에 똥 누면 안 된다, 오줌도 코딱지도 묻혀선 안 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4세 이상.

<비나리 달이네 집> : 권정생 글·김동성 그림
주인공은 말 하는 강아지 '달이'와 그 말을 알아듣는 농부 신부님이다. 달이는 산에 놀러갔다가 사람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견'이다. 신부님도 과거가 있다. 전쟁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집이 불타는 경험을 했다. 달이가 하늘을 보며 가끔 눈물짓는 것은 사람들이 불쌍해서다. 덫을 놓아 약한 짐승들을 잡고, 전쟁을 일으키고, 거짓말하고 화내고,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들이 답답해서다. 신부님이 도시의 성당에서 시골 통나무집으로 옮겨간 것도 달이가 '하느님도 성당에서 나와 드넓은 벌판에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이상.

<오소리네 집 꽃밭> : 권정생 글·정승각 그림
회오리바람에 휘감겨 40리나 떨어진 마을로 날아간 잿골 오소리 아줌마가 우연히 학교의 꽃밭을 구경하게 된다. 거기에는 나리꽃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등 사람들이 마당에 심는 예쁜 꽃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오소리 아줌마는 집으로 돌아가 오소리 아저씨에게 꽃밭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그런데 아저씨가 꽃밭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헤치자 곳곳에서 꽃 뿌리들이 걸려나온다. 이미 그의 집에도 진달래 개나리 패랭이꽃 도라지꽃 같은 들꽃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은 작고 남이 가진 것은 크게 여기는 욕심을 꼬집는 동화다. 4세 이상.

<딱친구 강만기> : 문선이 글·민애수 그림
딱친구란 북한 말로 둘도 없는 단짝 친구란 뜻이다. 강만기는 북한에서 살다가 부모를 따라 압록강을 헤엄쳐 건너 중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탈북자다. 사람들의 경계심과 낯선 생활방식 등으로 인해 남한에서 적응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학교 친구들에게도 자신이 탈북자이고 나이도 두 살이나 많다는 것을 숨기고 그것이 탄로날까봐 하루하루 마음 조이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 민지와, 같은 탈북자인데도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수향이 때문에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년의 여정이 잘 그려져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덧붙이는 글 | 이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인권>잡지 7,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정현상 님은 동아일보 주간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권>은 비매품으로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구독신청은 국가인권위 홈페이지, 이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인권>잡지 7,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정현상 님은 동아일보 주간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권>은 비매품으로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구독신청은 국가인권위 홈페이지, 이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권정생 #강아지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