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배형규 목사의 영정 사진
2007년 7월 20일 아침 6시,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몸살과 오한으로 밤새 잠을 설치다 어렴풋이 든 잠이어서 금방 받지 않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끊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대사관 강아무개 영사의 전화였다. 이른 아침에 대사관으로부터 전화라, 심상치 않은 듯하여 곧 전화를 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른 아침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한국인들이 피랍되었다는 정보가 있어서 확인차 전화 드렸습니다. 단기 방문객들 가운데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곧 전 지역에 확인해 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강 영사와 통화를 마치자 혹 싶어서 칸다하르로 전화를 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시는 지부장이 이날따라 잠에 덜 깨신 듯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문의를 드렸는데, 혹 그런 팀이 있나요?"
"어제 한 팀이 오도록 되어 있었는데,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있는 분당 샘물교회 단기팀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해결이 된다 해도 그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후폭풍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할 복잡한 문제다.
아프간이 가장 큰 피해자…한국 선교 위기관리 능력 떨어져
이번 일로 우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결과가 나오든 결국 그 내용은 부메랑이 되어 아프간에 피해를 입힐 것이다. 아프간은 여전히 위험하고 불량 국가라고 전 세계가 한번 더 확인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 선교의 위기라는 것이다. 고 김선일 선교사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 교회의 위기관리 능력은 제로 수준에 가깝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능력이 아직은 미숙하다. 이번 사태로 인해 선교의 문이 닫힐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단순논리만 붙잡고 무분별하게 뛰어들 세력이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사건이기에 어디서부터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니 인간적인 솔직한 심정은 당장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 살게 되더라도 더 이상 아무 방문객도 올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입국이 금지된 상태에서 언론사들은 연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해온다. 기독교 방송사들도 "선교사님, 선교사님" 하면서 연일 현지 상황에 한마디라도 듣고자 목을 맨다. 내가 선교사인지 특파원인지 착각이 든다. 어쩌면 이 기회에 생방송 9시 뉴스에 이름 석 자라도 올리고 싶은 숨은 공명심 때문일까? 기자도 아니면서 괜히 목에 힘주고 이런저런 개인 평까지 섞어가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장단을 맞추어본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무분별한 한국선교 전략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의 희생양인가? 작년에 연이은 비기독교인들의 엄청난 비난을 단지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이들의 편견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선교의 길은 계속 가야 한다는 헌신만을 다짐하기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가 단순논리로 해석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지난 6년 동안 수많은 단기팀들이 이 곳을 지나갔다. 이번 팀보다 더 많은 인원의 단기팀들도 수없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번 팀이 현지 문화에 돌출되는 행동으로 주목받을 짓을 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현지 사정에 밝은 3명의 한국인 선교사의 인솔 하에 이동을 하지 않았던가? 다만 카불-칸다하르 길은 아침에 출발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부분은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는다.
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여러 단기팀 중에 유독 이 팀이 희생양이 되어 시대의 집중을 받고 있는 것은 이 팀이 지녀야 할 십자가일 수밖에 없다. 주님은 그런 아픔을 이 팀에게 허락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것인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문제였고 그것이 어쩌다 보니 '샘물팀'이라 한다면, 이곳의 선교사들은 그동안 안전 불감증 속에 단기팀들을 맞이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 팀만을 희생양으로 삼기에는 앞으로 이 팀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 누군가는 같이 져주어야 하고 그 누군가에 한국교회 전체가 동참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그런 준비가 안 된 듯하여 더 걱정이 앞선다.
둘째 녀석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늦은 시간이지만 한국인 인질들의 협상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착잡한 심정으로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는 사무실로 다시 가서 계속 생각했다. 도무지 편한 마음으로 집에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성경은 믿음을 요구하는데 믿음이 자꾸 없어진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울분을 터뜨리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이 안 되는 나의 미천한 영성이 안타깝다.
같은 시간 서구 선교사들은 동방에서 온 믿음의 동료들을 위해 특별 저녁기도회로 모이고 있다. 특별한 관계도 없는 23명의 영혼들을 위해 사건 직후부터 24시간 기도 체인을 만들어 자원하며 기도해주는 그분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늦은 시간에도 누군가는 골방에서 기도의 합주를 아버지께 올려드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