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사태를 다룬 EBS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김민정 PD.시사기자단
이번 다큐여자는 <시사저널>에 사표를 낸 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파업에 참여한 기자들 중 장영희, 김은남, 안은주라는 세 사람의 여기자를 중심으로 이제는 전직 <시사저널> 기자가 된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나는 꿈을 이룬 사람입니다. 대학 때 처음 보고 이 매체의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사저널>의 기자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곳을 떠나게 되다니.' - 안은주 기자
'<시사저널>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합니다.' - 김은남 기자
'참혹했습니다. 인간 대접을 못 받은 곳에 내가 그렇게 너무 오래 있었구나.' - 장영희 기자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오래 사랑했던 <시사저널>과 결별하게 했을까요? 무려 80개에 달하는 촬영 테이프를 밤 새워 프리뷰하며 저는 정말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자들을 취재했던 우리 PD는 촬영 기간 내내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울고 다녔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취재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Daum에서 후배들이 붙여준 '씨닉'(냉소적인)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눈물에 밥을 말아먹었습니다. 7월 2일에 방영된 MBC의 PD수첩'기자로 산다는 것'을 보신 분들도 모두 울었다고 했습니다.
왜, 무엇이 그렇게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냈을까요?
이 사람들은 정말로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 '사건'을 계기로 그들은 고급스럽고 품위있는 국내 최고 시사주간지의 잘 나가는 기자에서 일터를 잃고 거리에 내동댕이쳐진 파업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6개월 넘게 월급 한 푼 못 받고 집에 있는 에어컨까지 내다 팔아가며 힘겨운 싸움을 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3페이지의 기사였습니다. 지난 2006년 6월 16일 밤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은 밤중에 인쇄소에서 경제면에 실릴 예정이었던 이 기사를 삭제했습니다. 삼성그룹의 이학수 부회장의 권한이 강화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편집국에서는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물론 사장은 편집국장과 취재총괄팀장 등을 불러 이 기사의 삭제를 종용했었습니다. 중앙일보 출신의 금창태 사장은 자신과 삼성 경영진과의 친분관계를 들먹이며 삼성이 껄끄러워 할 만한 기사는 싣지 말라고 한 것이죠. 편집국장은 회의를 소집해서 기자들의 의견을 물었고 기자들이 기사를 실어야 한다고 하자 사장에게 기사를 뺄 수 없다고 하면서 인쇄소로 넘긴 것입니다.
책에서 이 기사가 빠진 사실을 알게 된 편집국장은 항의성 사표를 던졌고 사측은 이를 즉시 수리해 버렸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장영희 취재총괄팀장에게 무기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24명의 기자 중 무려 열일곱 명에게 징계를 내렸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정말이지 기자들로서는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기자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기사를 삭제한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그 과정의 몰상식함과 사태에 대응하는 사측의 태도였습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다수의 언론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사측은 자신감을 얻었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알 권리'조차 빼앗긴 상황에서 기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같은 언론계의 동료기자들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종이신문의 기자들은 자본권력 앞에서 이미 기자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그 일로 기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을 하고 사측의 직장폐쇄로 맞서며 1년을 끌다가 지난 7월 2일에 파업 기자 전원의 사표 제출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금창태 사장은 취재진과 독자, 시민단체 대표 등 23명을 고소하는 어이없는 행각을 벌였습니다.
우리가 장영희와 김은남, 안은주 기자를 취재하기 시작했을 때 김은남 기자는 제2기 노조집행부의 사무국장을 맡은 참이었고 사측과 협상을 벌이다가 사주인 심상기 회장의 서울문화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회사측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는커녕 나중에는 기자들에게 동료 5명의 목(사표)을 가져오면 나머지는 받아주겠다는 파렴치한 제안까지 했습니다.
촬영 도중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은 김은남 기자와 정희상 기자(노조위원장)이 심상기 회장의 북아현동 집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모습입니다. 회사가 부도났을 때 2년 가까이 월급을 못 받으면서도 지켜냈던 회산데, 18년을 이어온 <시사저널>의 전통을 포기할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심회장과의 만남과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심회장은 자기 회사에서 십수년을 근무해온 기자들이 오뉴월 땡볕에 밥을 굶고 있는데도 8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단식 8일째 되는 날 노조 총회를 열고 회사와의 결별과 새매체 창간에 뜻을 모은 그들은 드디어 그토록 사랑했던 <시사저널>의 장례식을 치릅니다. 편집국의 명패 앞에 흰 국화를 바치며 흐느끼는 기자들의 모습, 뒤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는 그들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