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징검다리이정근
"군인은 몇 명이나 동원하느냐?"
"충청도·강원도·전라도 군사가 4만 명입니다."
"개천을 파는 일이 거창한데 군인의 수가 적다."
"5만 명으로 하고 정월 15일에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농사에 지장이 없도록 공사를 조속히 마무리 하도록 하라."
인력동원 문제가 확정되었는데 안동 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 최용소와 충청도 도관찰사 한옹이 한양에 올라와 이의를 제기했다.
"갑사(甲士)와 선군(船軍) 그리고 조호(助戶)는 다른 역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 이미 나타난 영갑이 있습니다. 지금 개천을 파는 군인을 징발하면 수를 채우기가 어려우니 가을을 기다려서 역사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국토방위를 우선으로 하는 정예군은 개천공사에 투입할 수 없으니 가을로 미루자는 것이다.
"신도(新都)의 이 역사는 급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지금 기계가 이미 갖추어지고 군인의 수가 이미 정하여졌으니 파할 수 없습니다."
계획대로 추진하자고 의정부에서 강력히 주청했다.
"기쁨으로 백성을 부리고 백성을 적당한 시기에 부리는 것은 예전의 도(道)입니다. 만일 의리에 합한다면 비록 칼날에 죽더라도 또한 분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쁘게 하는 도리는 창고를 열어서 양식을 주고 밤에는 역사를 쉬게 하여 피로해서 병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영의정 하륜이 말하였다.
"개천을 파는 것은 폐지할 수 없습니다. 때는 농한기이니 무엇이 불가한 것이 있겠습니까?"
좌정승 성석린과 우정승 조영무도 개천공사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