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적인 그들을 욕할 수 없는 이유

[드라마 리뷰]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

등록 2007.07.20 10:55수정 2007.08.0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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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현실이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대신 대중들의 말초적 감각만을 자극하는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현실도피의 환각제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드라마의 사회현실 풍자에 대해서도 여전히 인색하다. 드문 경우긴 하지만 드라마에서 우리사회의 모순적 현실에 대한 풍자가 나올라치면 그들은 이번에는 그 드라마가 위화감과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드라마들이 현실에 대한 왜곡이며 선정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거다.

이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는 것의 의미는 가족애와 같은 가장 보편적인 휴머니즘만을 다룬다는 얘기이다. 성별과 연령과 계급을 초월하여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고, 누구에게나 진실일 수 있는 이야기, 그것만이 현실이다. 치정이나 불륜은 불쾌하고, 교육현실의 모순이나 계급 갈등은 불편하다. 그것들은 소재적 선정주의이자, 일부 현실을 침소봉대하는 왜곡과 과장이다. 그것들은 '객관적'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도대체 객관적 현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차피 진실과 루머는 한 끗 차이다. 그것은 사랑과 스캔들의 차이처럼 입장의 차이에 불과하다. 나에겐 진실인 것이 누군가에겐 루머가 되고, 스캔들이 된다. 그곳에 진실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강남현상이, 부동산열풍이, 교육광풍이 누군가에겐 자신이 직접 그 진원지가 되기도 하고, 생계의 위협에 시달리는 누군가에겐 생판 딴 나라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객관적인 현실에 대한 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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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시작 첫 주부터 언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이 드라마가 제 얼굴에 침을 뱉듯 우리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알고는 있으나 차마 보고 싶지는 않은 현상들과 마주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판의 초점은 강북과 강남 사이에 과장된 위계와 격차를 설정하여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 게다가 오히려 역으로 강남현상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강남사람들에게는 있는 게 죄냐 하는 억하심정만 돋우고, 강북사람들에게는 자존심에 상처는 물론 열패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곧잘 드라마를 폄하하면서도 드라마의 영향력을 이렇듯 과대평가하는 이들에게서는 뭔가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 특유의 두려움이 묻어난다. 위화감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그들 자신이 연루된 치부가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장 흔한 레토릭이다.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결코 침해될 수 없는 것으로 남겨야 하는 사람들이 현실을 가리기 위해 자주 쓰는 협박성 멘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격차와 갈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현실의 격차와 갈등을 드라마는 결코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블랙 코미디나 풍자라는 형식의 우회를 거쳐 우리는 문제적 사회현실의 발치에나 겨우 이를 수 있을 뿐이다.

실상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교육현실은 이미 풍문으로 전해 듣거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겪었거나 우리가 직접 엮인 일들이다. 강남·북 입시율 격차에서 촌지문제, 사교육의 폐해나 특목고 열풍, 조기유학붐과 교육이민, 학교조직의 관료화와 재단의 비리까지 눈만 뜨면 들려오는 참혹하게 일그러진 교육현실은 인류에게 닥친 환경적 재앙만큼이나 절망적이다.

이토록 지긋지긋한 교육문제가 드라마를 위한 배경도 아니고 바로 주제이자 형식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는 일은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집에서 매일 보는 교율열에 들뜬) 드세고 극성맞은 여자들을 드라마에서까지 보게 된다는 것은 정말로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래저래 이 드라마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사로 바라보기에는 아픔이 있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와 미쳐 돌아가는 현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이 드라마는 단지 강남과 강북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도시와 주변부, 서울과 지방의 이야기이자, 시간차를 두고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단지 교육문제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경제와 정치와 문화가 결부된 총체적 사회구조의 난맥상이다.

강남은 단지 우리시대 욕망의 최전선에 위치한 상징적 기호일 뿐이다. 강남이라는 기호는 부와 교양, 문화, 생활수준이 결합된 궁극적 도달지점이자 성공의 지표를 의미한다. 그 속에서 명문대 입학율과 아파트시세와의 상관관계가 논해지고, 경제적 능력과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의 복합함수가 그려진다. 그 속에서 집단적 네트워크의 결속과 그 모든 자본의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교육을 통해서이다.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그야말로 우리사회에 '구별짓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개개인의 이기심이 어떻게 집단적 파워를 형성해 가는가의 이야기이다. 즉 지역적, 계층적 분화와 경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의 희극적 역설을 통해서이다. 이 역설의 교훈은 뱁새는 황새를 쫓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황새나 뱁새나 지들이 어느 방향으로 날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만든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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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여기서 교육은 남들은 이렇게 한다더라 하는 유행이자 트렌드이며, 드라마는 그 유행이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가의 문제를 그린다. 그러나 이 트렌드는 단지 내가 남보다 더 있어 보이고 싶고 더 잘나 보이고 싶은 현재의 자기만족 심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 다가올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이 불안과 두려움이 강남, 강북,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를 난감하고 절박한 교육열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그리는 엄마들과 교사들은 모두 풍자의 대상이지만, 그들이 결코 냉소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한심하고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가련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식 교육 위해 강남에 입성한 강북출신의 민주(하희라 분), 미경(정선경 분)이나 원조 강남 엄마 수미(임성민 분)나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무슨 짓도 할 수 있는 억척이기는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건 이 드라마의 일관된 풍자적 시선과 거리가 만들어낸 독특한 인물형들이다. 주인공인 민주와 서상원 선생(유준상 분)이 그들이다. 이들은 드라마 주인공으로는 드물게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휩쓸리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들이다. 민주는 자존심 구겨 가며 수미에게 정보를 구걸하지만 또한 수미 부류의 텃새에 반항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촌지시인에서 촌지선생으로 변신한 상원은 과한 촌지액수에 놀라고 교육현실을 고민하고 김용택 같은 섬진강 선생님을 꿈꾸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사장 딸 수진(김성은 분)을 넘보는 속물이다.

이들은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거부와 타협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들이다. 우리의 삶이 매 순간의 투쟁과 타협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항상 현실에 대한 거부와 안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우리의 딜레마는 이들이 우리가 맘 편히 쉽게 감정이입하거나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그들과 한 편이 되기엔 이게 아닌데 뭔가 찝찝하고,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기엔 그들에 대한 풍자의 시선이 너무 강하다.

이러한 관중의 심리를 눈치 챈 드라마의 딜레마는 풍자를 계속 세게 밀어부칠 것이냐, 삼각로맨스로 유인하여 살살 달래가며 갈 것이냐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현재로선 후자로 갈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풍자도 잃고 관중도 잃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정치판에서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강남엄마따라잡기 #드라마 #강남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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