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안치고 위에 호박잎을 잘 펴서 찝니다. 밥물을 먹고 꺼내면서 밥알이 붙어 있어야 제맛이죠. 약간 누스스름해야 맛있어요. 여기에 풋고추를 같이 올리세요. 양념간장에 들어갑니다.산채원 촌장
산나물을 이야기하고자 한 사람이 구태여 흔하디 흔한 호박을 꺼낸 까닭이 하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산나물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밭 가에 심었으므로 밭 나물 또는 밭작물로 분류해야 마땅하나 넝쿨에 붙어있는 줄기와 잎이 여느 나물 못지않게 요긴하게 쓰이며 어느 산나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호박꽃이 시드는지 모르게 애호박이 먹음직스러울 때 자연이 준 선물이 또 하나 있으니 오늘의 주인공 '호박잎 쌈'이다.
부드러운 걸 골라 가시가 떨어지게 살살 비벼서 밥 위에 앉혀 데치면 푹 퍼진 보리와 흰쌀이 뒤엉켜 호박잎이 물러지면서 밥물을 한껏 머금고 있다. 함께 풋고추 몇 개 같이 데쳐졌으니 양념간장에 숭숭 썰어 넣으면 매운맛도 가신다.
간장에 파릇한 보리밥 한 숟가락 퍼서 찢어질 듯 말 듯 끈끈한 밥물 질질 흐르는 누런색으로 변한 호박잎에 올려 보쌈을 끝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보드란 솜털이 혀를 간질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르르 녹아 목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만다. 애나 어른이나 손놀림이 바빠지는 건 당연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리, 마룻바닥에 앉아 모깃불 피워가며 먹었던 어린 시절 그 맛은 단순한 추억 이상의 향긋한 선물이다.
호박잎에 애호박 네모로 썰어 넣은 된장국도 물릴 만큼 먹었지만 순수한 그 맛에 벌써 내 마음은 밭 가에 머물고 있다.
총각 시절 경기도 가평 유명산휴양림 앞쪽 빈집을 빌려 농사지으며 민박을 치고 3년째 살고 있었다. 헌 집이었지만 예약 손님이 끊이지 않아 결혼만 했더라면 아예 눌러앉을 뻔한 시절 이야기다.
풋고추며 옥수수, 들깻잎, 호박잎 등을 먹고 간 서울사람들에게 안겨주면 좋아라 하는 사람이 반, 난감한 표정을 짓는 사람 반이었다. 그 중 호박잎을 스무 장 남짓 손에 들고 건네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