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아름다운 가게 옥상, 기자는 다큐멘터리를 담고 있는 카메라 기자를 두 가지 모습으로 찍었다. 카메라 기자는 차가운 벽면을 찍었을까, 희망을 찍었을까?(2)오승주
갤러리 '눈'에서 미술품들은 모욕과 외면을 감내해야 했다. 청중들은 미술품보다는 미술품에 붙은 붉은 딱지(구매가 완료된 그림에 붙는 표시)에 더 관심이 있었고, 마음은 이미 콩밭도 아니고 시사기자단이 만들어낼 새 매체에 벌써 가 있었다. "기자들의 미술전" 콘셉트부터 참 안 어울리는 조화다. 오죽하면 고재열 기자가 '모욕'이라는 단어까지 꺼냈을까.
미술부의 이정현 기자는 '이 PD'로 불린다. 다른 기자들이 사진기를 들고 덤빌 때, 시사기자단에서 유일하게 '촬영용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바로 이정현 기자이다. 이정현 기자는 시사저널 사태의 전모를 담아서 기록으로 남기는 '특명'을 수행하였던 것인데, "맨 마지막 장면은 사태가 해결되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는 이 기자의 말이 귀 끝에 애잔하게 울린다.
그가 이번 행사를 위해 준비한 '9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원래 갤러리 '눈'에서 상영하기로 했는데, 현지 사정으로 인해 매우 엉뚱한 장소에서 상영되었다. '아름다운 가게' 옆 건물의 흉터투성이 벽이 스크린이 되어주었다. 동료 기자는 "기자가 셔터와 펜을 잡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감동적인 다큐였다"고 촌평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이 '같기도'한 상황을 오랜 시간 무마해야 했다.
새 매체, 내리치는 '지상명령'
새 매체라는 지상명령은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미술을 선전물 또는 출자금으로, 어엿한 문화부 기자를 성명서 글꾼으로, 전문 기자들을 '장사꾼'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독자들도 지금의 상황이 '특별한 때'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독자가 가지고 있는 애정과 감시라는 두 개의 시선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른바 '시사기자단의 2중대 견제론'을 펼쳤던 시사모의 회원은 지금은 '2중대 선봉론자'가 되었다.
미술부 양한모 기자는 시사저널 표지를 위해 정성껏 만든 '캐리돌(caridoll)'(캐리커처를 담아낸 인형)을 장터에 팔기 위해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작품의 우수성을 소개하며 구매를 권장하는 판촉행사도 직접 열었다.
'아름다운 가게' 옥상에서 했던 이숙이 기자의 인사는 가히 '아름다운 인사'로 기억될 만하다. "7월에는 후원금 많이 주시고, 8월에는 특집기사거리 많이 주시고, 9월에는 우리 잡지 많이 사주세요!" 이숙이 기자는 이렇게 '뻔뻔'해졌고, 그것은 시사기자단에서는 매우 당연한 현상이었다.
정도(正道)로 가기 어려울 때 우리 조상들은 상황을 봐가며 임기응변을 사용했는데, 유가에서는 이를 '권도(權道)'라 했고, 불가에서는 '방편(方便)'이라고 했다. 시사기자단 기자들이 꼭 이와 같다. 하지만 권도든 방편이든 주의사항이 있다. 이것들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오래 쓰면 반드시 역풍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정도와 권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기자들. 그들에게 판단의 기회란 없다. 오직 지상명령만 있을 뿐이다. 기자들이 어서 빨리 '정도'로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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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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