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방학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는 방학이 되어야

등록 2007.07.18 14:39수정 2007.07.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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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도시의 편리함 쫓아가는 이때, 그러한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되레 시골에서 사는 요즘 행복합니다. 길섶에 도란도란 피어있는 개망초, 이름 모를 풀꽃 하나, 보잘것없는 나무 한 그루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듭니다.

시골에서는 그 존재의미를 크게 따지지 않아도 생활 주변의 자잘한 것들 또한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다 다른 향기로 어우러져 살며, 진솔한 삶의 맛깔로 서로 마음 따뜻한 이웃이 되고, 더불어 그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참 좋게 챙겨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렇지만 시골 사는 맛은 무엇보다 생활의 여유가 있고 자연과 친화 교감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도 그러할 겁니다.

매번 방학 때면 하늘 같은 아이들을 떠나보기가 섭섭합니다. 그렇지만 한껏 기가 살아서 방방 내달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흡족해집니다. 그동안 얼마나 학교생활에 짓눌렸고 답답한 교과서에 힘들었을까.

실컷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고, 고집스런 담임선생한테 교실붙박이로 잡혔으니 책 읽으라는 소리가 귀에 못이 박였을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마솥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냅다 뛰놀아야 하는데, 정작 방학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어떻게 보낼까 궁금해집니다. 바람 같은 아이들이 제 하고픈 일로 너그럽게 풀려났으면 좋으련만, 우리 반 개구쟁이들, 막상 방학을 한다고 해도 그리 달갑지 않은가 봅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방학에 대해서 왈강달강하는 자체가 방학의 의미를 새롭게 진작하는 것일 테니까. 평소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말없이 그냥 노는 아이보다 무언가 하겠다고 왕왕 대는 녀석이 훨씬 재미있고, 그 행동이 도드라집니다.

또래들과 곧잘 어울리고 딴 짓을 많이 하는 아이들도 돋보입니다. 대개 창의성 있고 자율적인 심성을 가진 아이들은 그저 가만있질 못합니다. 다리에 근육이 부어서 그렇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방학이라고 집안에만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제 하고픈 일을 챙겨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연과 가깝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의 잣대로 묶어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연 화딱지가 돋게 마련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몇 어머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방학이라고 그냥 뒹구는 아이들 보면 속이 상한다고 합니다. 부모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아이들이 아이다워야지 어디 어른들처럼, 아니 애늙은이처럼 제 할 일 꼬박꼬박 챙겨서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융통성이라고는 손가락만큼도 없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곤혹스럽습니다. 부모님이 시키는 일 잘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방학생활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소 마음이 헤헤 풀어지고 느슨해진다고 해도, 조금은 게으름을 피우고, 딴전을 핀다고 해도 저는 그런 아이가 훨씬 발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빈둥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제 속을 단단히 챙깁니다. 그런데도 애써 닦달하며 학원과외로 내몰고, 다그치며 학습지에다 예능교습까지 맞물리고 나면 아이들 그 쪼그만 어깨 짓눌려서 견뎌내겠습니까.

아이들, 공부를 조금 못해도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최곱니다. 말은 뻔하지만 그게 잘 용납이 안 됩니다. 그만큼 애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란 걸 안다면 그저 얼굴 붉혀가며 닦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든 제 자유롭게 풀려나서 하고픈 일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합니다. 그게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최선의 방책입니다.

제 아이 이제 고3이지만 아직까지 학원과외에 매달리지 않아도 그렇게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제 하고픈 것을 하게 놓아두었더니 틈나면 책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제 생각으로 움직입니다.

길든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제 앞가림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부모가 아이들 길잡이가 되고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자립심을 갖는다는 것, 스스로 설 수 있는 자긍심을 가진다는 것은 아이들이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려났을 때 가능해집니다. 그렇기에 이번 방학만큼은 아이의 자발성을 계발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고,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신록처럼 풋풋하게 피어나게요.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소리'와 웹진에세이에도 내냅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소리'와 웹진에세이에도 내냅니다.
#아이들 #방학 #눈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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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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