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토론까페> '알파 걸, 남성을 넘어서는 여성인가'에 출연한 가수 이안씨.EBS
반드시 그렇게 해주기를 당부하는 까닭은 바로 토론의 맞상대였던 전원책 변호사의 발언 때문이다. 아래에 몇 가지를 요약해 본다. 내가 꼭 그 프로그램을 일별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아래 '요약'이 혹시라도 전체 중에서 필요한 것만을 쏙 빼낸 거 아니냐는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둘째는 아래의 발언들은 실제 방송에서는 대단히 공세적이며 위압적으로, 게다가 상대방의 발언을 끝까지 듣지 않거나 거칠게 반문하면서 행해진 것임을 확인해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발언 1 : 세계적인 철학가·음악가·시인·화가 이런 사람들 중에 정말 많은 사고를 하고 깊이 사색을 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이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각각 순서대로 수잔 손탁(철학),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음악), 넬리 작스(시), 프리다 칼로(화가) 등을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일부러 이 명단에서 '여성성'을 소재 및 주제로 삼은 여성 학자와 예술가를 포함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예컨대 신디 셔먼이나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할 경우 틀림없이 '여성 문제니까 여성이 조금 했겠지'하고 판단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이전의 인물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전 세기에도 빛나는 성취를 이룬 여성이 없지 않으나 나는 일부러 '여성이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만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두루 생각해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발언 2 : 거시적으로 볼 줄 알고 깊이 있게 사색하는 건 아무래도 남자가 앞서는 거예요. 그런데 과연 이런 식의 교육 커리큘럼에서 여성이 시험 쳐서 1등 한다, 사법시험에서 1등 한다. 과연 그 사람들이 인간학에 대해서 제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냐,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사법 시험에서 1등한 사람이 반드시 인간학에 대해 제대로 판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1등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문제의 핵심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더욱이 '거시적이며 깊이 있게 사색하는 것'에 성별의 구분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역시 의문이다.
전 변호사에게 '용하다 용해'를 권한다
발언 3 : 6시 땡 되면 퇴근하려고 하는 게 전부 다 여성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스포츠서울>의 인기 연재 만화 '용하다 용해'를 전원책 변호사에게 권하고 싶다. 남성 직장인들이 주인공인 그 만화의 단골 소재는 6시 칼 퇴근이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은 칼 퇴근을 하고 싶은 것이다. 성별 구분이 있을 수 없는 현대적 삶의 운명이 바로 6시 칼 퇴근이다. 혹시 여성이 자주 그리하였다면 아마도 데이트 약속도 있겠지만 일찍 가서 아이들을 챙겨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난 97년의 IMF 사태 때 각 방송사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기억해 보라. 거기에는 실직하여 갈 데 없는 남자들이 공원이나 서울역을 어슬렁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여성 실직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왜? 여성 실직자들은 주로 집에서 가사를 하였고 이는 '가정으로 돌아간' 지극히 '자연스런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취재 대상으로 매력적이지 못하였던 것이다. 실직의 고통에는 차이가 없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6시 칼 퇴근도 마찬가지다. 모든 직장인은 6시 칼 퇴근을 욕망한다. 성별 구분이 없는 얘기다. 있다면 이를 바라보면 시선의 차이 뿐이다.
발언 4 : 힘든 3D 직종은 아직도 남성이 다 하라는 겁니다. 대표적인 데가 군대 아닙니까? 거리의 청소부 중에 여자 봤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직업, 편한 직업은 반씩 나누자는 거예요.
이에 대하여 나는 반반씩 나눌 수 있는 '재미있고 편한 직업'이 뭐가 있을까 대단히 의아스러운데, 그 전에 우선 관련 기사를 소개하고 싶다.
"올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0%를 넘었지만, 여성 중 비정규직은 67.6%에 달했고, 월평균 162만1천원으로, 남성의 52.8%에 불과"(한겨레, 2007. 6.25)하다는 기사가 그 하나이며 "여성 근로자 10명 가운데 4명은 임시일용직에 종사, 지난해 전체 여성 취업자 가운데 임시일용직은 40.8%, 이에 비해 남성 취업자 임시일용직 비율은 25.2%, 또한 여성근로자가 평균적으로 받는 임금은 남성의 63.4%로 2001년(64.3%)보다 오히려 격차가 더 커진 것"(머니투데이, 2007. 7.3)이라는 기사가 그 다음이다.
<머니투데이>의 기사에서는 국가별 여성권한 척도 순위에서 한국이 조사 대상 78개국 가운데 53위에 그쳤다고 쓰고 있다. 여성권한 척도란 여성의 의회의석 점유율, 관리직 전문직 비율, 소득 차이 등에 있어 여성의 권한을 나타내는 것인데 아마도 이것이 전 변호사가 얘기하는 '재미있고 편한 직업'이 아닐까 싶다.
이마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여성이 반 정도는 참여할 수 있는 '재미있고 편한 직업'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이 세상에 재미있으면서도 더욱이 편한 직업이 과연 있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남성들의 지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