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피해자 지원 법안, 발효해야

일부 언론 문제제기는 역사 의식 부재

등록 2007.07.14 13:16수정 2007.07.1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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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국회는 우여곡절 끝에 ‘태평양전쟁 전후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정부입법으로 발의되었던 것은 ‘돈’ 때문이었다.

2004년 6월 국회는 대략 7조원의 예산지출을 요구하는 입법안을 준비 중이었다. 예산규모의 정당성에 이론을 제기하지 못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정부는 당시 국회를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조사와 검토를 거쳐 4천 5백억 원 규모로 성안된 정부법안이 국회 행자위를 통과한 후 본회의에서 폐기처분되었다.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46명의 의원서명을 받아 2천억 원이 증액된 수정안을 동시 발의했기 때문이었다. 본회의에서는 민주당의 이낙연 의원과 열린우리당의 문병호 의원이 수정안에 대한 찬성토론을 했으며 반대토론자는 아무도 없었다. 수정안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된 사실을 우리나라 언론은 대부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늦게 조선일보는 “재원 고려 안 한 무책임한 입법”이라는 제하의 1면 박스기사로, 문화일보는 “국회 졸속 법안으로 2000억 원이 날아간다”는 사설을 실어 정부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두 신문의 주장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첫째, 이들은 행자위 안이 본회의에서 심의되지 않았던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상임위보다 더 권위 있는 본회의에서 두 안을 모두 고려한 후 수정안에 대한 찬반 토론과 표결 절차를 진행했다는 점은 이 법안의 가결과정에 충분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둘째, 두 신문은 사안의 형식적 측면만 문제 삼으며, 법안의 역사적 의미나 사안의 특수성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강제 징집ㆍ징용자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도륙되었던 피해에 대해서 국민 보호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국가는 당연히 보상의무가 있다. 재원 마련은 부수적인 쟁점은 될지언정 핵심 쟁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소멸시켰던 ‘월권’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이 배상금은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투입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을 거듭하였던 반면, 태평양 전쟁의 직접 피해자들은 대부분 궁핍한 삶을 살며 노쇠해갔다.


일부는 직접 가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청구권을 일본에 양도해버린 정부 ‘덕분에’ 번번이 패소한다. 지난 5월 31일에도, 일본 나고야 고등법원은 근로정신대 피해할머니들이 미쯔비시 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원고의 청구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밖에도 한일협정은 피해자들의 모든 법적 권한을 부당하게 앗아가 버렸다. 일본 정부는 1950년에 미군정의 요구로 강제 징집ㆍ징용자와 유가족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급여 및 조위금으로 2억 엔을 일본은행에 예치한 바 있다. 이 돈은 현재 2조원 규모이며 휴면계좌로 잠자고 있다.


대외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관철해내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의 피해국민을 상대로 계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와 대통령은 이번에 통과된 역사적 법안을 거부할 어떤 명분도 없다.

2천억 원이라는 재정부담은 한일협정을 체결한 정부를 승계한 정부로서 감수해야 한다. 이미 1971년에도 정부는 재정형편을 들먹이며, 피해자들에게 국민소득 2천 불이 되면 생존자 모두에게 보상하겠다고 확답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로부터 다시 40여 년이 지났으며 바야흐로 2만 불 시대이다.

지금은, 대부분 85세 이상의 고령 생존자들에게 정부가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할 마지막 기회이다.
#태평양전쟁 #정신대 #일본제국주의 #강제동원 #한일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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