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위를 기어가고 있는 무지개아가마.로렌스 스미스
체 게바라, '사자는 제국주의, 톰슨가젤은 아프리카 민중'?
지난 1965년 콩고민주공화국의 밀림에서 혁명투쟁을 하던 체 게바라는 인접국인 탄자니아에서 톰슨가젤의 사진이 있는 엽서를 어린 딸에게 보냈다. 체 게바라는 "사바나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는 작은 가젤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우리 딸 생각이 나더구나, 이곳엔 사자가 있다는 점만 빼면 별로 다를 게 없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가젤들이 누구한테도 쫓기지 않고 맘껏 달릴 수 있는데…"라고 썼다. 체 게바라는 사자를 제국주의로, 톰슨가젤을 아프리카 민중으로 본 듯하다.
톰슨가젤은 우리 차량이 다른 동물을 보기 위해 떠날 때까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았다. 톰슨가젤을 떠나 초원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타조 두 마리가 다정스럽게 걸어가고 있고, 사자 2마리는 풀숲에 누워 있고, 하이에나도 더위에 지친 듯 푹 파인 흙 웅덩이에 몸을 숨기고 머리만 삐죽 내놓고 있었다.
더위에도 배가 고픈 동물들은 먹이를 찾아 초원을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3마리의 기린도 그렇고 물소와 코끼리, 개코원숭이들도 보였다. 작은 연못에는 수십 마리의 하마가 고개만을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생김새와 우스꽝스럽게 뛰어노는 모습으로 '초원의 어릿광대'라 불리는 누 떼와 얼룩말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는 그렇게 흔하던 누와 얼룩말이 아니던가. 세렝게티 초원도 평소 100만 마리의 누 떼와 20만 마리의 얼룩말, 15만 마리의 톰슨가젤 등이 뒤섞여 살고 있는 동물 천지세상이다.
내가 운전사에게 "동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말하자 그는 "동물들이 북쪽으로 이동해서 지금은 세렝게티에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3, 4월에 세렝게티에 오면 가장 많은 동물을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