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 선생은 제7회 역사강좌 때 단독으로 '한국사상사'에 대해 강의했는데, 단군과 민족사상, 불교신앙과 겸수론, 유학사상과 이단론, 노장사상, 자연관, 변혁사상과 사회사상이 그 내용이었다.한길사
한길역사강좌의 첫 주제를 나는 '한국민족운동의 이념과 역사'로 정했다. 오늘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운동'의 지향과 근거를 역사라는 프리즘 또는 이론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오늘 우리의 민족공동체적 지향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 '한길역사강좌'의 서설 같은 주제였다.
1985년 7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50여 명의 동시대인들이 성북구 안암동 5가 101-21번지 '한길사 세미나실'에 몰려들었다. 이날의 개강 강의주제는 박현채 선생의 '민족운동의 사회경제적 조명'이었다. 10시까지 거의 3시간 동안 강의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민족이란 민족과 민족간 모순에 대응하는 것이다. 민족운동을 규정하는 요인은 외부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 발전단계, 민족간 모순에 있어서 한 나라 자본주의의 성격과 발전단계 등이 있고, 내부적인 것으로서 한 사회구성체의 성격과 모순관계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구식민지 종속국과 신생제국에 있어서의 민족주의가 갖는 사회경제적 특질과 민족주의의 내용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논구되어야 한다."
이렇게 시작된 한길역사강좌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어김없이 진행되었고 강사와 수강자들은 동지적 열정과 우정으로 감정이입을 주고받았다. 강사와 수강자들은 '1차 강의'를 끝내고 다시 자리를 옮겨 '2차 강의'를 계속하곤 하는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정신과 사상·실천과 이론을 역사적 시각으로 규명하는 공개된 광장"의 주체로서, 강사와 수강자들이 하나가 되는 경이로운 풍경이 안암동 그 골짜기에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첫 한길역사강좌의 두 번째 강의는 신용하 교수의 '19세기의 한국민족운동'이었고 세 번째 강의는 강만길 교수의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의 성격'이었다. 네 번째 강의는 소설가 박태순씨의 '민족운동으로서의 민족문화운동', 다섯째 강의는 김진균 교수의 '한국의 민족운동과 사회과학의 방향', 여섯 번째 강의는 박현채 선생의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의 민족운동', 일곱 번째 강의는 송건호 선생의 '민족분단과 통일운동'으로 이어졌다.
80년대 중반 한국사회는 민족운동·민주운동으로 격동하면서 한국인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지적 체험을 하고 있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학자들로 구성된 강사진이 열강하는 한길역사강좌는 단연 새롭고도 이채로운 지적 경험이자 새로운 형식의 지식운동이 아닐 수 없었다. 선풍기를 계속 틀어놓았지만 그 좁은 약식 강의실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신념에 찬 강사들의 열강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는 수강자들, 강사와 수강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한길역사강좌는 그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작은 회사의 사장부터 대학원생까지
나는 제2회 역사강좌의 주제를 '한국의 사회사상'으로 정했다. 1985년 9월 26일부터 11월 14일까지 계속되는 것이었다.
이우성 성균관대 교수가 '한국의 사회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강의했고, 윤사순 고려대 교수가 '조선조 성리학의 사회사상'을 이어 강의했다. 김태영 경희대 교수가 '실학의 사회사상: 실학의 현실개혁론'을, 조광 고려대 교수가 '조선후기 사회변동과 사회사상'을,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가 '조선후기 민중문화의 형성과 그 사상'을, 김경태 이화여대 교수가 '개화사상의 사회사상적 이해'를 강의했으며, 고은 시인이 '민중신앙의 사회사상사적 인식'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강의를 했다.
한길역사강좌의 수강자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작은 회사의 사장부터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청년까지 있었다. 대학생들도 있었고 사회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선 교사로부터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예비학자들도 있었다. 역사강좌에 나서는 강사들이 민족문제와 시대상황을 고뇌하는 학자·문학가·지식인이기 때문에, 안암동 사옥의 작은 강의실은 늘 진지하고 치열한 분위기였다. 매주 '수요일'의 역사강좌를 통해 지식인·저자들과 시민·독자들은 새로운 교감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제3회 한길역사강좌 '한국현대사와 역사의식'은 85년 12월부터 86년 1월까지 진행되었다. 진덕규 이화여대 교수가 '한국민족주의의 이념과 성격'을 강의했고, 강만길 고려대 교수가 '8·15해방의 민족사적 단계'를, 신용하 서울대 교수가 '신채호의 생애와 사상'을 강의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이 '한국현대문학과 역사의식', 김윤식 서울대 교수가 '한국근대문학의 성격'을, 그리고 리영희 선생이 '6·25세대론의 시각'을 강의했다.
제4회 강좌는 86년 2월과 3월에 걸쳐 '한국의 기층문화'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김용운 한양대 교수가 '한국인의 자연관과 과학사상'을 강의했고, 윤서석 중앙대 교수가 '한국인의 삶과 식문화'를, 한옥전문가 신영훈 선생이 '한옥의 역사와 문화'를, 전경수 서울대 교수가 '섬사람들의 풍속과 삶'을, 김동욱 단국대 교수가 '복식의 역사와 문화'를, 조흥윤 한양대 교수가 '한국 무속의 세계와 성격'을 강의했다.
1986년 4월과 5월에 진행된 제5회 한길역사강좌는 '한국의 사회경제사였다. 김태영 경희대 교수, 이영훈 성균관대 교수, 이호철 경북대 교수, 유인호 중앙대 교수, 박현채 조선대 교수,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가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한국자본주의의 맹아문제, 조선시대의 농업사, 1876년 개항과 사회경제의 변화, 한국자본주의와 민족자본, 현대한국자본주의의 전상을 강의했다.
송건호·이이화·임헌영·김남식 선생의 단독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