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률이정근
그럼 대명률을 살펴보자. 대명률은 명(明)이라는 글자에서 짐작이 가듯이 명나라의 홍무제가 1374년 제정한 명나라 법률이다. 이를 우리니라의 고사경과 김지가 편찬한 것이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다. 조선은 명나라의 법률을 무삭제 수입한 것이다.
제정당시에는 태(笞), 장(杖), 도(徒), 유(流), 사(死)의 오형(五刑)이었으나 자자(刺字)와 능지처사(凌遲處死)와 같은 극형을 추가했다. 명나라는 황권수호 차원이었고 우리나라는 왕권수호 차원이었다.
한용과 정인수가 처형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터무니없는 죄명으로 백성을 죽인 권력도 나쁘지만 큰 말(大言)의 올가미가 두려운 대다수의 백성들이 침묵했다고 비난하지 말자. 그들이 거리에서 처형될 때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히득거렸던 백성들이 우매했다고 욕하지 말자.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큰 말(大言)을 뜯어보자. 큰 말이란 최고 권력이 금기시하는 말이고 그 말의 발언은 최고 권력자로서는 도전으로 간주했고 발언자는 양심으로 생각했다. 정인수가 꿈이라고 변명했지만 횡포를 일삼는 권력에 대한 소망일 수 있다.
옛 사람을 비판하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인 것 같지만 우리의 최근 세사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예사로운 말이 되었으나 이승만 치하에서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었다가 사형에 처해져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사람이 있다. 박정희 시대 '유신철폐'를 사주했다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8인이 있다. 그것도 확정판결 18시간 만이다.
'개헌'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기만 해도 어두운 지하실에 끌려가 곤혹을 치르고 더 큰 죄를 씌워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두환 시대도 있었다. 이때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었지만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들은 침묵했다. 영합한 자들이 더 많았다. 한용과 정인수가 살았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600년 전 그 시대 백성들보다 용기 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심에 따른 행동과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역사와 자신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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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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