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웃다리풍물은 내 인생이 되었다 | | | [대담] 젊은 국악인과 평택 전통예술단 ‘신명’ 박연식 단장 | | | |
| | | ▲ 쇠를 치고 있는 박연식 단장 | ⓒ김영조 | - 풍물굿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1991년 고등학교 때 평택에서 민중놀이패 산하 고등학생 동아리에 다니면서 전통문화에 입문했지만, 사실 그 당시 전통예술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국악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3년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상쇠이신 김기복 선생을 만나면서부터인데 이후 웃다리풍물은 내 인생이 되었다."
- 풍물 공연만이 아닌 전통춤까지 바탕을 넓힌 까닭은?
"장고는 우리 국악의 대표 악기로 정악에서부터 민속악까지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장구를 치다 보니 풍물은 물론 전통춤, 무속, 기악합주 등 다양한 영역에 접근하게 되었고, 풍물만이 전부가 아니며, 폭넓은 공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우리 전통문화는 무대공연이 아닌 마당놀이였다. 앞으로 공연을 무대가 아닌 마당으로 옮기고, 청중과 하나가 되어 즐기는 방향으로 바꿔갈 생각은 없는가?
"내가 참여하는 공연은 공연단의 성격과 공연장의 형태에 따라 항상 바뀌었다. 이번 공연의 첫째 목적은 많은 이들에게 국악을 알리고 가르치는 데 있기에 무대에 올려야 했다. 하지만, 안성남사당풍물놀이 공연과 지지난해 줄타기 보존회의 공연 활동 때는 모두 야외에서 마당놀이 형식으로 공연을 했었다."
- 군웅청배로 시작해 전통춤을 보이고, 풍물판굿으로 끝난 것은 바람직했다. 그러나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공연 하나하나의 시간을 줄이더라도 더 다양한 장르(기악, 성악)를 아우르고, 중간에 전통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설득하는 짧은 강연시간도 두면 어떨까?
"자체 발표 공연이 한해에 한번이다 보니 항상 이렇게 여유가 없다. 앞으로는 신명이 자생력과 공신력을 얻어 공연 횟수가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장르를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전통문화를 지켜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어떻게 꾸려나가고 있나?
"단원들 대부분이 군미필자인 어린 대학생이다. 각자 대학활동 위주로 움직이는 등 아직 전문인으로서의 활동은 문제가 많은 편이다, 지금은 이렇게 한 해에 한 번 공연을 올리면서 전체 모임을 하는 식인데, 단원들이 군을 제대하고 대학졸업 때가 되면 좀 더 심도있게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평택시청에서 해마다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음은 우리의 큰 버팀목이다."
- 평택시민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평택농악과 전통문화는 평택시민이 향유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 자산을 잇는 우리 공연자들은 관객의 추임새를 먹고 산다. 더 많은 관객이 자리를 채워주고, 손뼉을 쳐줄 때 평택은 더 자랑스럽게 빛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김영조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