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미래 이프
- 김신명숙하면 군가산점 토론과 관련된 일부 남성들의 반감, 그와 관련된 무지막지한 악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가 토론회에서 군대생활의 고충을 얘기하는 한 남성을 향해 "그래서요?"라고 (비웃듯이) 물어보고 깔깔거리고 웃었다는 것이다. 정말 사실인가?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나 역시 한국 남자들이 그 황금같은 청춘의 짧지 않은 시기를 강제로 징집당해 군에서 보내야 하는 현실의 부담과 어려움, 고통을 여느 사람들처럼 인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아들 하나만을 둔 엄마로서 나는 남자들 역시 손톱만큼이라도 차별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나 역시 군대 가서 고생한 남성들에게 국가가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 여성이나 장애인 등 이미 차별받고 있는 집단을 또 한 번 차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사건의 진상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은 이렇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군가산점제도가 위헌 소송을 당할 무렵인 98년이나 99년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인가 하는 토론회에 나가서 군가산점제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토론을 벌였는데 토론 중 방청객들이 출연한 패널들에게 질문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때 한 젊은 남성이 나를 지목했고 나는 어떤 질문인지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 분이, 군생활에서 쌓인 분노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겠지만, 질문을 바로 하지 않고 군생활이 얼마나 자신에게 힘든 부담이었는가 하는 요지의 발언을 이어나갔다.
알다시피 토론회는 항상 시간에 쫓긴다. 나 역시 할 말은 많은데 남은 시간은 별로 없어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빨리 질문을 해달라는 뜻으로 '그래서요?' 하고 물었다. 그때 그 분이 질문을 바로 해줬으면 사건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그렇게 물으니 그분이 좀 당황했던 듯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토론장 전체에 웃음이 터진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비웃음이 아니라)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당시 나는 전혀 그 분을 공격하거나 비웃지 않았으며 그럴 의도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요?'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약 10년간 했는데 아마 그 과정에서 몸에 익은 직업적 말투가 그분을 놀라게 한 것 같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처를 많이 입었을 것이다. 그동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같아 해명에 나서지 않았는데 이왕 이렇게 기회가 생겼으니 이 자리를 빌어 어쨌든 상처를 준 데 대해 그 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 정부는 여성들도 희망할 경우 사회복무로 병역을 이행토록 하고 군필자에게처럼 인센티브(가산점)도 부여하겠다는 방안을 확정했는데?
"아직 뭐라고 입장을 밝히기에는 이른 단계인 것 같다. 그러나 만약 가산점을 준다면 군필자와 똑같이 줘야지 사회복무라고 차등화한다면 거센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일부 여성들은 그렇다면 차라리 똑같이 군대에 가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우먼타임즈>가 2005년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대생이나 취업을 앞둔 젊은 여성 구직자 가운데 상당수가 군대문제로 불평등을 당하느니 차라리 군대에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여성들의 55.6%가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대답했다. 군가산점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부 남성들이 '여성들도 군대가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과 관련한 이슈들을 진지하고 포괄적으로 다루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성 군복무 주장이 남성들만 불이익을 당한다는 성차별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기 때문에 여성이 군복무를 똑같이 감당하겠다고 나선다면 출산과 육아 등 여성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다른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함께 제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똑같이 군대가겠다. 대신 취업시장과 직장내 성차별을 확실히 막아주고 출산에 대해 보상하며 육아도 절반씩 분담하도록 법제도적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논의의 확장은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우선 이 사회가 육아나 모성과 관련해 갖고 있는 잘못된 믿음들이 점검될 수 있다. 징병제만 제도가 아니다. 징병제 때문에 대다수의 남성들이 군대에 가듯이 대부분의 여성들은 모성이라는 제도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군복무기간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육아를 전담하면서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갖가지 불이익을 당한다.
육아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부담이자 구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는 아이 낳는 일을 축복이라고만 여기거나 여성의 선택사항이라고 우기고,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긴다. 군대와 관련된 성평등 논쟁을 우리 사회 전반의 성평등 문제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킴으로써 이같이 잘못된 인식을 바꿔나가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서양에서는 낙태문제가 대중적인 여성운동의 최대 이슈였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군대문제가 그렇다. 여성운동 진영은 군대문제를 제한없이 공론화함으로써 젠더문제 뿐 아니라 국가권력과 개인의 권리간의 문제, 군대문화 문제, 모병제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을 이 사회에 제기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생각해보면 여자가 군대 가서 좋은 점도 있다. 첫째, 신체가 튼튼해진다. 건강한 신체는 여성들이 사회 속에서 단단한 입지를 구축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굳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건강미 넘치는 아름다운 몸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군대생활을 통해 각종 어려움들을 극복함으로써 그동안 키우지 못했던 능력들과 자신감을 기를 수 있다.
셋째, 조직생활을 통해 결속감이 강해지고 조직문화를 배움으로써 사회에 나와 여성파워를 키우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남성들의 군대와는 다른 새로운 군대문화를 실험해 볼 수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군대갔다 온 여자한테 지금처럼 함부로 성희롱할 수 있겠는가?"
21세기는 양성평등, 다양성, 평화 등 여성주의적인 관점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남성이 먼저 여성의 코드를 이해하기 위해 <선택>을 읽은 후, 여와 남이 활짝 웃으며 사랑을 위한 소통의 대화를 시작하는 상상은 비온 뒤 쨍한 햇살을 만난 것만큼 꽤 유쾌한 일이다.
어쨌거나 김신씨와 인터뷰를 마치면서 여성이 지향하는 열린 길에 대한 밝은 희망을 보는 듯 했다. 이문열의 <선택>이 가부장제의 강요된 선택, 거짓된 선택이라면 김신명숙의 <선택>은 진정 자유로운 여성주의적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덧붙이는 글 | 저자 김신명숙은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여성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를 거쳐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 KBS-TV <미디어 포커스> EBS-TV <미래의 조건> KTV<생방송 e-Korea> SBS 라디오 <김신명숙의 sbs 전망대> 등을 진행했다. 현재 사단법인 문화미래 이프의 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에세이집) <불꽃의 자유혼 허난설헌>(소설)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소설) 등이 있으며 최근 8년 만에 남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 성격의 에세이집 <선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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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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