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짓듯 집 짓는 '야소골 바람목사님'

류우림 목사, 삼동볕도 나눠쬐는 통영 미륵섬에 귀농

등록 2007.07.09 11:56수정 2007.07.0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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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대 백악기에 터진 화산분화구가 이제 넉넉히 마을을 이룬 곳, 경남 통영시 산양읍 남평리 야소골. 통영 앞바다가 멀리 바라보이는 마을 뒷산 미륵산 중턱에 시 쓰는 목사님, 또는 목회하는 시인이 황토와 통나무로 새 보금자리를 손수 짓고 있습니다. 지난 6월초, 류 시인을 만났다.


통영 미륵도 야소골
통영 미륵도 야소골정기석
"강원도 주문진에서 평생 고깃배를 만들었던 장인어른 솜씨죠. 작년 11월 평당 6만원을 주고 이곳에 땅을 얻자마자 둘이서 아랫마을 빈집을 빌려 살면서 오로지 집 짓는 데 매달렸지요. 3달만에 뚝딱 지었어요. 전에도 집을 좀 지어봤거든요. 전나무는 강원도에서 구해오고, 흙벽돌은 전문적으로 만드는 가마에서 찍어오고, 그렇게 자재부터 공을 들여 지은 본채가 30평 정도 됩니다. 다락방은 서재로 쓸 생각이고요."

시 쓰는 목사, 목회하는 시인 류우림씨. 겉으로는 집짓는 데 이골이 난 목수의 모습입니다. 지금 본채 바깥으로 사랑채를 붙이는 추가 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번에는 장인어른이 빠진 대신 이웃에 사시는 마을 분과 단 둘입니다.

집 짓는 목사님
집 짓는 목사님정기석
"저 분도 통영에 직장 일로 왔다가 아예 마을에 눌러앉았다고 해요. 저 아랫마을을 한번 내려다보세요. 화산분화구 자리에 90호 가까운 마을을 이룬 야소골이에요. 사람 사는 마을의 모습이죠. 저 멀리 저수지만 하게 보이지만 남해바다도 어른거리고요. 무엇보다 이 촌구석에 번듯한 공공도서관과 학교들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산양읍이 바로 붙어 있어서 그런 덕을 보는 거죠. 지난해 이 마을, 이 땅을 보자 바로 '여기 살아야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오죽하면 집을 어서 지어 살고 싶어 한 겨울에 공사를 시작했겠어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고, 또 시인이 된 류씨는 30대 후반쯤 충남 연기군 어느 마을에서 3년 동안 하루 종일 툇마루에 앉아 볕을 쬐며 칩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결혼을 해야 목사 일을 할 수 있다며 안타까워하던 지인의 소개로 주문진에서 유치원 교사 일을 하던 정경미씨를 아내로 맞았고 바로 딸 우경이를 나았습니다.

가족
가족정기석
아무 일도 안하고 툇마루에 앉아 시나 쓰던 사람이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천연덕스러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무는 해오겠다고 했어요. 3일만 굶으면 살 방법이 나온다고도 하고... 결국 결혼한 직후 실제로 같이 이틀인가를 굶어본 적도 있어요. 그러고 있으려니 누군가 쌀을 갖다주고, 누구는 먹을거리를 챙겨오고 그러더군요."

더군다나 처가가 대대로 절에 다니는 집안이라 반대가 아주 심했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처의 할머니가 저를 부르더니 그만 결혼하라고 하시대요. 종류는 다르지만 진실한 믿음을 가지신 분들이니, 또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소중한 믿음을 나눠주신 것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첫 부임한 곳이 절해고도 울릉도 나리분지.

"가 보니 교회 살림을 꾸리는 기금이 13만원인가 남았다고 그래요. 가난한 마을이라 목사 사례비도 따로 줄 형편이 안 된다고 걱정만 하고, 참 막막하더군요."

통영 미륵도
통영 미륵도정기석
류씨는 교회도, 마을도, 그리고 아내도 함께 먹고 살 길을 생각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이었습니다. 신도들과 직접 힘을 합쳐 식당을 지었습니다. 이때부터 자연스레 집을 짓기 시작한 셈입니다. 울릉도와 특히 독특한 식생이 알려진 나리분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장사는 잘 됐습니다.

"집 짓는 법을 울릉도에서 스스로 터득했어요. 방에 모셔둔 작은 나무의자도 그때 아이를 위해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고요. 저 의자만 보면 그때 생각이 생생히 살아나죠."

잠시 살아온 감회에 젖는 류씨에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이지를 물었습니다.

"도자기 가마를 지어서 도자기를 좀 구워보려고요. 교회는 굳이 따로 세울 생각이 없고, 신도들 집을 돌면서 하는 듯 안 하는 듯 소박한 목회를 꾸려갈 겁니다."

'내 요람 야솟골은 씨알만한 동네/ 산울림이 뇌이는 동화속에 잠기어/ 세월이 비켜가는 그런 동네/ 법보다 먼저 순리를 익히어/ 우러러 섬기고 굽어 아끼며/ 울타리 넘나드는 치차향기 이웃/ 눈만 주면 풀빛도 따라와 주고/ 삼동볕도 나누어 쬐는 사람들/ 세상 눈치 안보고 옛말 하면서/ 까치밥 한 알 감도 남겨두는 동네'

마을 입구 '야소골찬가' 비
마을 입구 '야소골찬가' 비정기석
마을 입구에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어느 시인이 마을에 바쳤다는 '야솟골찬가'가 큰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목사시인 류우림씨가 이 마을에 살러올 것을 미리 예감한 듯한 시에 류씨는 자작시 '바람'으로 화답합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바람은/ 무수히 많은/ 작은 날개를 가진 커다란 새이지 싶다/ 바다에 가 서면/ 은빛 등지느러미에 유연한/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푸른 아가미로 숨을 쉬는/ 물고기이지 싶다/ 그래서일까/ 한 사람은 바다로 가고 한 사람은 산으로 갔다/ 한 사람은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한 사람은 어디선가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원주민 정기석이 쓴 이 기사는 월간마을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원주민 정기석이 쓴 이 기사는 월간마을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통영 #미륵도 #야소골 #류우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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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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