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길
저녁식사는 숙소와 붙어있는 중국집에서 하였다. 음식은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다만 좁은 테이블에 무조건 10명씩 꽉꽉 채워 앉게 하는 바람에 식사 중 옆 사람과 팔이 자주 부딪히어 불편함을 유발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식사는 코스별로 나왔는데 코스들은 대체로 길이가 짧았다. 사람들은 뒷사람이 신경 쓰여 음식을 제대로 들어내지를 못했고 한번 동이난 음식은 추가 보충 불가였다. 단 밥만은 예외였다.
술은 있었다. 가격도 괜찮았다. 와인 한병을 시켜 학생 다섯 명은 빼고 같은 테이블의 어른 다섯 분 앞에만 잔이 돌아가게 했다. 단체 여행에서 술을 마실 때 마다 느끼는 당혹감이지만 술잔의 배분은 늘상 어려웠다. 내돈으로 샀다고 이 동방예의지국에서 나 혼자만 마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테이블의 전원에게 같이 마시자며 술잔을 내밀기도 그랬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술값은 개인 부담이라 전원의 비용을 내가 부담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백수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만용이니까.
가장 손 쉬운 방법은 안마시면 되는데 집에서도 한 두잔을 반주로 즐겨 마시는데, 이 명승고적에 와서 술 한잔 없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금강산을 눈 감고 구경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논리가 성립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담배는 금연석 비금연석을 구분하면서, 술은 음주석 비음주석을 구별해서 취급하는 여행 패키지는 왜 안 생기는지. 팔순의 할머니는 와인을 아주 맛있게 드시면서 손녀들에게 자랑스럽게 한 마디 하셨다.
"와인은 몸에 좋아, 나도 전에는 식사 때마다 와인 한 두잔은 언제나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