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오는 날 전복의 천적 불가사리를 제거하고 나온 소리도 잠녀들.김준
소리도 어민들은 톳, 미역, 천초, 가사리 등이 자라는 조간대를 '갱본'이라고 부른다. 드는 물에 몸을 맡기고, 나는 물에 어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갱본. 갱본은 한때 어민들에게 논과 밭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갱본은 소리도 갯사람들의 곳간이었다. 이렇다 할 먹을 것이 없던 어민들은 톳을 넣고 밥을 해먹었고, 톳과 미역을 팔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했다.
지금은 마을에 나이든 노인들만 있어 일손도 부족하고, 바위나 여(밀물과 썰물에 의해 물에 잠겼다, 들어났다는 반복하는 바위)에 매달려 뜯는 일이 위험해 작업 할 엄두를 못 낸다. 무엇보다 가격이 옛날 같지 않아, 주민들 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입찰을 해 채취권을 주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영을 트면(작업 일이 결정되면)' 가가호호 한 명씩 나와 공동 작업을 해 건조한 후 여수상인들에게 연락을 해 공개입찰을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어촌계장과 이장 월급은 물론 마을공동기금을 마련했던 것도 이 갱본이었다.
사실 소리도 어민들이 전복이나 해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오래된 것은 아니다. '해녀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제주 잠녀들을 데리고 와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다른 지역처럼 전복양식을 위해 시설을 하고 관리를 할 수도 없다. 바다가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친 바다에 전복씨를 뿌리고 바다에 오롯이 맡길 수밖에 없다. 어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 뿐이다.
큰말과 역포의 주 소득원은 전복이다. 최근 전복이 줄어들면서 작은 새끼 전복을 마을어장에 뿌려 3~4년 기다려 잡고 있다. 그렇다고 가두어 기르는 것이 아니며,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씨를 뿌릴 뿐, 자연 상태로 놓아 잠녀들이 물질을 해서 잡기 때문에 '자연산'과 진배없다.
다른 섬 같으면 갯벌을 막아 농지라도 만들려는 노력을 했겠지만 소리도의 바다는 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는 주민들에게 '갱본'을 주었던 모양이다. 주민들이 선택한 방법이 개간이었다. 산비탈에 나무를 뽑고 거친 뿌리를 제거하고 밭을 일궜다. 그나마 하늘이 주신 물을 잠시라도 가둘 수 있는 밭은 논으로 만들었다. 밭은 어떤가. 가파른 능선을 숨 가쁘게 올라 한 숨을 돌려야 하는 곳이다. 이런 논과 밭들은 모두 묵히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누렁소 차지가 되었다. 한때 쟁기를 달고 힘겹게 일하던 일소들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씨프린스호에서 고대구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