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깔아놓는다는 말이 뭐예요?

깔아놓은거지, 임금체불한 게 아니라고요?

등록 2007.07.07 16:48수정 2007.07.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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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안 주긴 누가 안 줬다고 그래, 이 사람아, 뭘 알기나 하고 떠들어.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야!"
"제가 그 사람들 말로 정확하게 물어보고 확인해서 여쭈는 건데요. 석 달 넘게 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하던데요."
"석 달은 무슨 석 달이야. 두 달은 깔아 논거고, 이번 달치는 형편이 어려워서 조금 밀린 것뿐이야."
"깔아놓으셨다는 게 임금체불이지 뭡니까. 일하는 사람으로 보면 석 달치 월급 못 받은 게 맞지요."
"그게 어디 임금체불이야. 깔아놨다니까, 걔들도 그건 다 알아."


인도네시아인 따땅과 그 친구가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석 달 넘게 급여를 받지 못했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해당업체에 전화를 했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경기도 이천에서 계란판을 만드는 모 업체에서 일을 하며 급여지급이 일정치 않고, 석 달 넘게 급여를 받지 못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대개의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체불 등으로 송금을 하지 못하면, 송금만을 기다리던 고향의 가족들은 돈 문제도 돈 문제지만, 신변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걱정하기 때문에 이중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두 사람은 체불임금 문제를 풀어보려고 여기 저기 부탁을 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언어 전달이 쉽지 않아 서로 간에 앙금이 생기고,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우리 쉼터를 찾아왔다.

사연을 전해 들은 쉼터에서는 두 사람의 문제에 대해 관할고용지원센터에 연락을 하여, 근무처변경을 직권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의 근무처변경이 회사의 동의 없이 노동부 직권으로 가능한 상황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외국인의 근로 및 취업지침'에 의하면, "사업장 변경 신청 전 1년 이내에 월 임금액의 3할 이상을 지급받지 못한 달이 2월 이상인 경우 또는 1년 이내에 임금의 전액이 소정의 지급일보다 1월 이상 지급이 지연되는 달이 2월 이상 되는 경우" 즉 '임금 등의 체불 또는 지연 지급이 계속되는 경우' 노동부 직권에 의한 근무처변경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따땅과 그 친구의 경우 석 달 이상 급여를 받지 못했고, 급여 지급일이 일정치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했기 때문에 명백히 직권에 의한 근무처변경 대상자였다. 문제는 담당자가 업체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월급을 깔아놨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월급을 '깔아놓는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구구절절 깔아놓는다는 말이 임금체불과 같은 말이라는 사실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지원센터 담당자는 "업체 측에서 노동부 전화를 받고, 이번 달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으니, 근무처변경 직권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따땅과 그 친구의 근무처변경에 동의를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업체측에서는 이리저리 규정들을 알아봤는지 급여를 주지 않고도 당당하게 고함치며 뭘 모르고 떠든다고 윽박지르던 태도는 어느덧 사라지고, 따땅의 근무처변경에 동의할 수없는 이유로 "따땅에게 근무처변경을 해주면 다른 사람들도 다 해 달라고 할 텐데 어떻게 해줄 수 있느냐. 우리 같은 업체들 인력난을 이해해 달라"며 읍소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사실상 따땅의 회사는 외국인력 고용제한 업체에 해당했지만, 고용지원센터의 미적지근한 태도와 체불임금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회사로 인해 따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열흘 넘게 일을 못해 심적 물적 곤란을 겪어야 했다. 결국 힘없고 말이 서툴렀던 따땅은 임금체불을 조만간 해소하겠다는 업체측의 약속을 믿고 두 손 들고 회사로 돌아갔지만 마음이 편할 리 만무했다.

따땅의 일을 겪으며 섬유봉제 등의 제조업체에서 직원들의 이직 방지를 핑계로 일정 기간 동안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불법 관행에 대해 노동부 담당자가 모른다는 사실이 의아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현장 경험이 없는 젊은 사람이라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외국인력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무지하다면 애매한 피해자들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동부 외국인력 고용팀에서는 외국인력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에 대해 적절한 직무교육과 함께 적절한 언어지원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임금을 주지 않고도 큰소리치는 회사에 대해 외국인력 고용제한 등의 조치가 적절하게 취해지고, 근무처변경 제한 등으로 인해 현대판 노예제도라 비난받는, 산업연수제와 다를 바 없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작금의 고용허가제의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 #임금체불 #인력난 #고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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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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