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수세미 넝쿨로, 비닐로 묶은 부분의 순이 꺾어지자 그 아래 세 마디에서 새 순이 돋아나 하늘로 향해 잘 자라고 있다.박도
며칠 전, 수세미를 살피다가 크게 놀랐다. 잘 자라던 수세미 줄기의 앞부분 순이 꺾어져 있었다. 나는 우리 집 카사(고양이) 소행으로 단정하자, 아내는 보지도 않고 그놈 탓을 한다고 나무랐다.
청설모 소행인지, 다람쥐 소행인지, 아니면 뒷산 멧새 소행인지 아무튼 줄기의 맨 앞부분 성장 순이 뭉텅 꺾어져 수세미가 더 자라지 못하고 그대로 자지러지지 않을까 몹시 안쓰러웠다.
어제(6일) 오후 텃밭에 풀을 뽑고자 수세미 곁은 지나는데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그새 꺾어진 순은 아물었고 그 밑으로 세 마디에서 새 순들이 돋아 기세 좋게 하늘로 쭉쭉 뻗고 있지 않은가.
순간 나는 그 광경을 보고는 하늘의 섭리에 감탄하면서 곁에 있는 아내에게 "나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죽어도 되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고 하면서 그래도 내가 죽는다는 말은 듣기 싫었든지, 아이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유능한 사람도 하나의 분자일 뿐
1976년도 나는 서울 오산중학교 교사에서 이대부속중학교 교사로 학교를 옮겼다. 그때 이대부속중고등학교 교감은 전아무개 선생님으로, 여러 후보자 가운데 특별히 나를 뽑아 주셨다. 이듬해 학기에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려주시고 중요 보직도 맡기셨다.
그런데 그해 여름, 그 교감 선생님은 40대 한창 나이로 세상을 뜨셨다. 그때 그분에게는 유족으로 젊은 사모님과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드님이 있었는데, 그 뒤로 일체 연락도 끊어진 채 잠적하다시피 사시다가 20여 년이 지난 뒤 소식을 전해 와 댁으로 찾아뵌 적이 있었다.
그 사모님은 두 아드님을 매우 훌륭하게 키우셨는데 장남은 사업가로, 둘째 아드님은 법관으로, 그리고 당신도 부족함 없이 사시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버지의 죽음이 그들 유가족에게는 큰 충격으로, 가족 모두 아버지 생존 때보다 세상을 더욱 열심히 산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교감 선생님이 살았을 때는 이따금 자녀들이 공부에 소홀하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 중, 아버지가 갑자기 떠나자 그들 형제는 마른 날의 벼락과 같은 절망감에 자신들의 본업에 더욱 충실하였나 보다. 언저리의 값싼 동정도 싫어 연락도 단절시킨 채 독한 마음으로 마침내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소망-아버지는 법과대학에 진학하려 했고 법관이 되고자 했음-을 이루었으리라.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가운데 매우 어리석은 두 대통령이 있었다. 한 분은 나 아니면 이 나라가 공산화가 된다고 무리하게 3선 개헌을 하여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학생들의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 4·19 혁명이 일어났다. 그 혁명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 이국의 병상에서 세상을 뜨셨다.
또 다른 한 분도, 전직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것도 보고서도 나만은 예외라고, 내가 아니면 이 나라의 경제가 파탄이 나서 백성들은 기아선상(굶주림)에 놓일 거라고 무리하게 3선 개헌을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초강수로 헌정을 유린, 기상천외의 유신헌법으로 종신대통령을 꿈꾸다가 아주 볼썽사납게 세상을 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