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수거함송유미
의상디자이너들의 고민은 하루 자고 나면 자신이 만든, 짝퉁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데 있다고 한다. 철이 바뀌면 거의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많이 만난다. 맞춤이 사라진 기성품시대. 옷으로 개성을 표현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의식주란 말이 있듯이 의복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생활 예절이다. 인스턴트 식품처럼 과다하게 생산되는 옷의 풍요 속에서 옷으로 예절을 표현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공무원이나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 등에서도 사원들의 복장을 '프리'에 맡기고 있다. 옷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도 옳지는 않지만, 너무 흔하게 옷을 구할 수 있어서 옷만 번지르르한 사람으로 인해 옷으로 그 사람의 기품이나 인품을 가늠키 어려운 점도 있다.
대부분 익명으로 만나는 삶 속에서 입고 있는 의상으로 그 사람의 기품을 읽는다. 옷이 너무 많아서 고민인 이 시대, 낡은 옷을 입었지만 고상한 인품을 나타나는 옷차림은 잘 만날 수 없다. 너무 오래 입어서 고유한 체취를 풍기는, 단벌신사도 만나기 어렵다.
오늘도 숱한 옷을 옷장에 쌓아두고 옷이 없다고 쇼핑을 하러 나온다. 옷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날고자 하는 이카로스의 날개와 무관하겠지만, 한번쯤은 새 옷을 살 때마다 정말 사야 할 옷인가 하는 심각한 고민은 있어야겠다.
풀 먹인 모시 옷이 그립다
이즈음이면 어머니와 누이들이 모깃불을 피우고 숯불 다리미로 식구들의 모기옷과 삼베옷을 다림질하던 한여름밤이 그립다. 식구들의 옷을 손질하느라 밤을 새우면서도, 늘 아버지가 입다 못 입게 된 빛바랜 와이셔츠나 구멍 난 러닝셔츠를 입고 사셨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이젠 걸인들도 옷을 기워 입지 않는다. 웬만한 아파트 옷 수거함에는 새 옷 같은 옷들이 버려지고 있다. 이 옷들을 수거해서 자선을 베푸는 단체도 많다. 풍족한 옷 천국에 살아가면서, 삼베옷처럼 껄끄러운 피부에 닿는 어머니의 진솔한 바느질 솜씨 옷이 그립다.
작은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한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 동시 '엄마의 런닝구', 배한권
인생은 단벌이라 소중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의식은 언어의 표현으로 연결되는지, 요즘 젊은이들의 은어를 빌리면, 옷을 갈아입었다는 말은, 애인을 바꾸었다는 뜻이란다.
이혼이 많아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 배신이 많아지고, 믿음과 신뢰가 없어지는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너무 많기에 너무 쉽게 버리는, 넘쳐나는 생활의 풍요에서 오는 악영향 때문은 아닐까. 없는 것이 없어서, 귀한 물건도 없고, 소중한 사람도 까맣게 잊고 산다.
오늘따라 이 동시는 두툼한 추억의 앨범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한다. 누런 서류봉투에 빈 점심도시락을 넣어서, 검은 고무줄로 꽁꽁 동여맨 낡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단벌신사 우리 아버지가 풀벌레 소리 왁자한 그 저무는 푸른 강둑길로 달려오고, 퐁당퐁당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함께 마을 아낙들의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려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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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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