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전리 구진벼루가 있는 산자락. 뒤로 보이는 산이 대전과 옥천에 걸쳐 있는 식장잔이다.안병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 성왕이 죽은 곳은 구천이다. 그렇다면 구천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구천의 위치를 추정해내려면 먼저 관산성이 어디에 있었던 자리부터 파악해야 한다.
관산성이 삼성산이라는 견해를 깔고 들어가면 구천(拘川)은 군서면 월전리 군전마을 근처 구진벼루가 된다. 마을 앞으로는 서화천이라는 꽤 너른 내가 흐르고 내의 바깥쪽으로는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능선 중간쯤에 높이 약 30m가량의 험준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구진벼루이다.
이곳은 '구진벼루' 또는 '구전벼루·구진벼랑' 등으로 구전되어 불리고 있다. 구전되는 과정에서 '구천'이 '구진'으로 변음된 것이고 '벼루'가 벼랑 즉 절벽을 뜻한다고 보면 구진벼루가 맞다는 것이다. 고리산 자락 아랫마을 군북면 이백리 '갯골(갯내)'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갯골을 한자식으로 표기하면 구천에 가깝다는 것이 추정의 근거인 듯하다.
월전리 구진벼루로 들어가는 길은 각종 공사가 한창이다. 어수선하기도 하고 온통 파헤쳐져 있어 걷고 싶지 않은 길이다.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여기서 답사의 대미를 접기로 한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바람직한 품성
공원묘지 한편에 앉아서 잠시 140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졌던 관산성 싸움을 생각한다. 이 싸움을 단순히 아득한 옛날에 있었던 흥미로운 전쟁으로 치부하는 데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교훈을 얻을 것인가. 관산성 싸움에서 어떤 명쾌한 교훈을 얻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삼국시대와 달리 지금은 백제가 우리나라도 아니고 신라가 무찔러야 할 '외적'도 아니기 때문이다.
백제 성왕은 신라를 습격하려고 겨우 보병과 기병 50명만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狗川)에 도착한다. 이건 아무래도 죽음을 자초한 무모한 행위였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도대체 그 적은 병사로 어떻게 하려는 것이었을까. 성에 몰래 잠입해 신주총관이자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이라도 암살하려던 속판이었을까.
신라군은 아마도 이 정보를 내통자 혹은 첩자를 통해서 사전에 알고 매복해 있다가 불시에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다. 관산성 싸움은 백제에 대한 신라 첩보전의 개가로 보인다. 애당초 이 싸움의 실마리였던 서기 553년의 싸움 역시 나제동맹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가 신라에 방심의 허를 찔린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성왕에게는 정세를 파악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전략과 각개 전투에 임하는 전술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 이 싸움에서 패함으로써 백제는 서서히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성왕의 방심과 자만, 전략전술의 부재는 그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나라마저 멸망으로 치닫게 했다.
성왕의 경우에서 나는 지도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품성을 추출해내고 싶다. 방심과 자만은 개인에게도 해독을 끼치는 심각한 문제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에게는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성품이다. 방심이나 자만 같은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에선 상황에 맞는 전략적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올해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점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후보의 면면과 지나온 자취들을 꼼꼼히 따져보고자 한다.
이 글의 마지막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전문적인 역사 연구가 아니다. 답사기를 쓰기 위해 내 딴에는 문헌을 탐독하고 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지만 소설 같이 돼 버린 부분도 없지 않다. 나 자신은 결코 사실에만 근거해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고 믿는 실증주의자는 아니다. 실증하는 것은 지식을 확장하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역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인 실천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역사는 결국 해석의 문제이며, 그 해석을 가지고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하느냐의 문제라고 귀착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세계를 해석하려고 시도할 뿐이다. 게으른 전문가보다는 열정적인 아마추어가 만드는 세상이 훨씬 역동적이라는 게 내 지론이며 그것이 또 내 부끄러운 답사기에 대한 변명이나 방패가 돼 줄 것을 믿으며 답사기를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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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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