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최성민
장마가 끝나면 복더위가 시작된다. 복더위에는 으레 '복달임'(여름철 복날에 보신 음식을 먹는 일)이 따른다. 예로부터 남도지방에서 복더위는 '민어 철'로 불리어 왔다. 민어는 예로부터 '복달임'의 으뜸 음식이었다. 삼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었다고 하니 민어가 복달임 음식에서 차지한 바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생선의 싱싱한 맛을 으뜸으로 치는 남도지방에서 민어는 찜보다는 주로 회나 탕으로 먹었다. 민어(民魚)라는 이름 자체도 '민초들의 물고기'라는 뜻이어서 예전에 민어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생선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민어가 잘 잡히는 서남부 지방과 서울 등지에서는 민어가 인기있는 바닷고기이었지만 민어가 나지 않는 동해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생소한 생선이었던지 민어에 대한 이야기나 민어 음식이 드물고 요즘도 민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산어보>에서 "고기 맛이 달다…"고 했는데 민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는 민어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실제로 민어회를 먹어보면 민어 살 맛이 다른 고기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달크작작한 맛을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어 살은 그만큼 달고 부드럽고 고소해서 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맛을 즐길 수 있다.
넓은 바다와 기름진 갯벌을 두르고 있는 서남 해안 지방에서는 봄부터 철 따라 먼바다로부터 생선들이 알을 낳기 위해 가까이 오기에 그때마다 풍족한 미각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을 한 가지 더 갖고 있다. 벌써 초봄부터 주꾸미에서 송어, 병어, 준치, 갑오징어 등 봄 생선이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주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민어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민어는 병어와 준치 철이 막 지난 6월 하순부터 8월까지 신안군 임자면 재원도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풍물지리서에 민어가 골고루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민어 복달임이 서해안 전체에 고루 분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재원도 일대엔 20년 전까지만 해도 파시가 섰다고 한다.
이곳 '타리파시'는 일제시대엔 섬 주위 모래등에 초막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일본의 기생들까지 몰려들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최대 성어기인 8월에는 알 낳으러 가는 민어들의 울음소리로 온 바다가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요즘도 6월 하순부터 제일의 민어 산지인 재원도 일대엔 민어잡이 배들이 몰려들고 지도 송도위판장엔 민어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민어는 중부지방에서는 찜으로 유명하지만 신안 목포 등 남서해안 지방에서는 싱싱한 상태를 이용해 주로 회로 먹고 머리와 뼈, 내장은 민어탕으로 먹었다. 또 회를 뜨고 남은 살은 전을 부쳐 먹는다. 민어찜은 민어가 성질이 급해서 잡히자마자 죽어버리므로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는 서울이나 먼 지역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