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고루(鐘鼓樓)박도
그때의 범종각은 종고루(鐘鼓樓)로 식수대는 지붕조차 쓴 채 불유각(佛乳閣)으로 변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씀하신 바 있지만, 추억이 서린 인공물도 사람도 그 새 숱하게 사라졌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 고등학교 건물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사라졌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도 모두 내 곁을 떠나셨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친구도 스승도 여러 분 돌아가셨다. 나 또한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하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경내를 한 바퀴 돌고는 대법당인 적광전에 들었다. 부처님께 우러러 삼배을 올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팔각구층탑을 한 바퀴 돌았다. 죄 많은 인생이 무슨 복을 빌겠는가. 그저 알맞을 때 데려가 달라고 두 손을 모았다.
용금루를 거쳐 오대천으로 나가자 맑은 개울물이 돌돌돌 흘러내렸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나는 개울에 엎드려 짐승처럼 물을 마셨다. 참으로 오랜만에 개울 물을 간장이 시원하게 그대로 들이켰다.
경내를 한 바퀴 도는 새 버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투덜투덜 다시 전나무 숲길로 내려왔다. 저만치서 스님 한 분이 성큼성큼 다가오신다. 요즘은 스님들도 대부분 차를 타고 다니시는데 드문 광경이라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 몇 발자국을 옮기자 다람쥐 한 마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두 발을 열심이 비비고 있었다.
월정대가람을 벗어나자 곧 매표소 정류장이 나왔다. 올 때의 역순으로 거기서 버스를 타고 진부로, 장평으로, 방림삼거리로, 안흥장터 마을로 네 번을 갈아타고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이른 뒤 서울서 내려온 딸과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오늘 아침밥을 먹고는 모두 아홉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상원사와 월정사 탐방을 마친 뒤 다시 내 집에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으니 참 세상 편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