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철, 학교 교실은 여전히 19세기

폭염 속의 수업, 학생·교사 모두 괴롭습니다

등록 2007.06.28 15:44수정 2007.06.28 17:19
0
원고료로 응원
40명도 훌쩍 넘는 중학교 학생들이 생활하는 교실은 무더위에 장맛비까지 오락가락하는 요즘엔 그야말로 '불쾌지수 100'의 후텁지근한 공간입니다. 에어컨이라도 있으면 좀 나을 텐데, 벽에 걸린 조그만 선풍기 석 대로 여름과 맞서려니 팬 돌아가는 소리가 외려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몸이 축 늘어지다 보니 마음도 느슨해져 수업 분위기도 엉망이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수업 내용이 시험에 나온다거나 태도 점수에 반영한다며 을러대봐야 소용없고, 차라리 '조금만 더 참고 집중해 달라'고 손바닥을 빌며 통사정하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벽에 기댄 채 힘겹게 돌던 선풍기도 어느새 더운 바람이 나고 짜증 난 몇몇 아이들은 교복의 웃옷을 벗어 던지며 한 마디씩 투정을 늘어놓습니다.

"요즘 같은 때는 에어컨 없는 학교에 등교하기가 싫어요."
"학원은 시원해서 공부가 잘 되는데… 학교는 그냥 일찍 끝났으면 좋겠어요."

시설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학교에는 교실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일반계 인문 고등학교의 경우는 대학입시 공부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지방 교육청마다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하고 에어컨을 설치했지만, 정작 더 필요하다 싶은 중학교에는 아직은 먼 동네 얘기일 뿐입니다.

학교가 학부모로부터 갹출한 불법 찬조금도 교육청의 빠듯한 학교 시설 관련 예산을 '보충'해 주려는 듯 교실마다 에어컨을 자체 설치하는데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불법이든 편법이든 다시 학부모들에게 손을 벌리자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지경입니다.

학교에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도록' 9월 학기제로 바꾸고 여름방학을 2~3개월로 늘리자는 얘기도 간간히 들려오지만, 어차피 공교육 기관인 학교가 연중무휴(?)로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등으로 사교육을 대체, 또는 흡수하고,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중심 문화 공간이 되자면 차라리 많은 돈이 들더라도 교실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당장 시급한 문제인 콩나물 교실 좀 해소해 달라고, 교실 한 칸 더 증축하고, 교사 한 명 더 채용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봐도 그때마다 마냥 기다리라는 상급 관청에게 '사치스럽게' 에어컨을 교실마다 설치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마다 예산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결국 한 해 두 해 시간만 흘러 해마다 같은 때에 같은 하소연만 늘어놓게 돼 몸도 마음도 귀찮아지고 맙니다. 두루 통용(?)되는 '예산 부족'은 하나의 공식처럼 무슨 일이 차질을 빚을 때마다 듣게 되는 답변이 되었습니다.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아이들을 무더운 여름, 찜통 같은 교실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견디게 해야 할 만큼 힘들고 가난한 나라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조그맣고 영세한 학원보다도 시설이 못한 학교에 하루 종일 가둬두느니 아이들의 말마따나 방과 후 학교고 뭐고 그저 일찍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지 싶기도 합니다.

한 손에는 분필을, 다른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힘겹게 수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학부모들이 조금도 아깝지 않게 쓰는 자녀들 학원비의 일부만이라도 매일 10시간 가까이 생활하는 학교 교실에 투자된다면 아이들이 이토록 무더위에 짜증내며 공부하지는 않을 텐데 싶었습니다.

대충 조사해 보니 학급에서 서너 명 빼고는 모두 학원에 다니고, 학원비도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50~6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나름대로의 효과가 있다고 믿으니 자녀를 기꺼이 학원에 보낼 테고, 너도 나도 다 학원을 찾는 이런 분위기가 웬만해서는 쉬이 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학부모들의 기꺼워하는 자녀 학원비의 전부는 아예 바라지도 않지만, 절반, 아니 1/5만이라도 학교 교실에 투자된다면, '19세기 시설'이라고 놀림당하는 학교는 그 어느 곳 부럽지 않은 최고의 생활공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재미 삼아 단순히 계산해 보니 이렇더군요. 학급 44명 중 40명이 학원을 다닌다 치고, 매월 10만 원씩만 교실(학교 전체가 아닌) 한 칸에 단 1년만 꾸준히 투자된다고 해도 그 총액이 무려 4800만 원이라는 '목돈'이 됩니다.

이 정도면 에어컨은 물론, 캐비닛 형태의 사물함도 갖출 수 있고, 낡은 교실 책상과 의자를 모두 최신형으로 바꿀 수 있으며, 컴퓨터와 빔 프로젝터 같은 고급 교육 기자재까지도 설치할 수 있을 만한 액수입니다. 자녀 학원비의 극히 일부, 그것도 꼭 1년만 투자돼도 그렇다는 겁니다.

기실 이런 것들은 정부의 교육 복지 관련 예산을 늘림으로써 실현되어야 할 것이지, 애꿎은 학부모들의 주머니를 더 털어서 이룰 문제는 아닙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한 달에 수십, 수백의 학원비는 기꺼이 '투자'하지만,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위해 기부하는 일에는 10원짜리 하나조차 아까워하는 현실에서 이런 계산은 쓸 데 없는 이상이며, 환상이 되고 맙니다.

'자녀 교육'에만 관심이 있을 뿐,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이뤄지는 '공교육'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는 대다수 학부모들에게 돌멩이를 던질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그들만의 '삶의 철학'일 테니까요.

그것이 교육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양극화되고 살기 팍팍해져만 가는 우리 사회를 위해서 자신과 이웃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쯤도 공식처럼 외고 있습니다. 곧 '아무도 달라지지 않는데, 나 혼자만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두려움이 깊숙이 몸에 배어 있는 셈입니다.

오로지 믿을 것이라곤 자신과 가족 밖에는 없다는 푸념이 보편이 돼 버린 사회에서 교육의 힘도, 도덕의 힘도, 종교의 힘마저도 한없이 왜소해 보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려니 등허리에 땀이 흥건합니다. 따지고 보면 다닥다닥 붙어 앉은 아이들의 등허리는 서로 뿜어내는 체온 때문에 더욱더 축축할 겁니다.

이런 땀냄새 퀴퀴한 폭염의 교실을, 학교에 자녀를 맡겨놓고 학원비 벌충에 여념이 없는 학부모들은 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교육 복지 예산 확충에 별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책상 위 쌓인 서류에 파묻혀 있을 행정관료들은 느끼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교무실에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넥타이를 풀어 에너지를 절약에 동참하라는 '하절기 복장 간소화 규정' 공문이 올려져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옷차림을 바꿔 (에너지를 아껴라는 뜻이 아닌) 더위를 버텨내라'는 말 같아 무척 생뚱맞게 느껴졌습니다. 뉴스를 보니 내일(28일)은 장맛비가 지나면서 더위가 잠시 주춤할 거랍니다. 다행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학교 교실 #무더위 #에어컨 #19세기 #선풍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