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성주영
규모 확대를 위해 농지를 사고 시설을 확충하는 데 쓰기 위해 농협 등 은행에서 빌린 돈은 고스란히 부채가 되어 돌아왔다. 농가의 평균 부채는 1990년대 초반의 800만원 대에서 최근에는 300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1억원 이상의 악성 고액부채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까지 했다. 농가 부채 때문에 자살하는 농민은 과거의 역사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사실 이러한 재앙에 가까운 결과는 처음부터 예상됐다. 많은 전문가들과 농민단체들은 규모화를 통한 가격과 비용의 경쟁력 제고가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근본적인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시장과 경쟁력을 신봉하는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여전히 그들은 시장과 경쟁력을 농업에 들이대고 있다. 자신들의 명백한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는커녕 6㏊ 수준의 전업농 7만 농가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경쟁력을 키운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생산규모를 아무리 키운다고 해도, 설사 6㏊의 전업농이 7만명이 된다고 해도 경지 면적이 100ha 수준인 미국 농민과 경쟁할 수 있을까? 미국 농민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규모화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좁은 경지면적 때문에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설사 규모화해 부분적으로 비용을 줄인다고 해도 생산비용의 약 40~50%를 차지하는 토지 용역비 때문에 대략 4~6배의 가격 차이를 보이는 미국이나 중국의 농산물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부자만 유기농 먹는 '먹을거리' 양극화 올 수도
이러한 규모화가 잘 먹혀들지 않자 1990년대 말부터 새로운 교리가 탄생하는데, 바로 최근에 유행하는 소위 '품질경쟁력'이다. 시장 소비자들의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친환경농산물, 기능성 식품원료, 고품질 브랜드 농산물 등을 생산하여 경쟁력을 갖추자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시장'으로부터 제공된 것이다.
그런데 시장지배체제에서 친환경농산물, 기능성 식품원료, 고품질 브랜드 농산물 등은 소위 '틈새시장'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제한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도 유기농산물 생산비율이 5%를 넘는 국가는 극소수이며,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OECD 국가들은 1~4%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향후 아무리 크게 성장하더라도 전체 농산물의 10%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친환경농산물 유통에서 가장 큰 비중한 차지하는 생협 조직들은 이미 친환경농산물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상당한 재고 부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