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르벨리 <아고라복스> 대표.박영신
<아고라복스>의 대표 카를로 르벨리(38)는 이것이 민첩한 누리꾼의 정보 습득력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아고라복스>는 프랑스판 <오마이뉴스>다. <오마이뉴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르벨리가 프랑스에 첫 시도한, 시민기자가 만드는 인터넷 신문이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전공한 이탈리아인 르벨리는 1993년 파리에 도착해 1995년까지 2년 동안 프랑스의 여론조사 기관 '이폽(Ifop)'에서 일한 바 있다. 생물학자이자 미래학자로 파리의 라 빌레트 과학 산업 도시의 자문위원인 조엘 드 로네(60)를 만난 것도 1995년의 일로 인터넷이 매개였다.
이듬해인 1996년 르벨리와 로네는 기업 경제연구 회사인 '시비옹(Cybion)'을 설립했다. 시비옹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인터넷을 이용해 경쟁사의 정보를 수집, 분석, 제공하는 회사로 <아고라복스>의 모태가 됐다.
이때부터 르벨리는 인터넷 대화방을 시작으로 각종 블로그까지 프랑스의 인터넷 인구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누리꾼들은 타인의 의견을 소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오마이뉴스>의 사례는 프랑스에서 인터넷 미디어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오마이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결정적으로 <아고라복스>의 출범을 다짐하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12월 발생한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이었다. 사건 현지에서 날아온 각종 정보의 출처는 일반 시민이었던 것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슬로건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스타 블로거에서 대선 후보까지
<아고라복스>가 프랑스에 첫 선을 보인 것은 프랑스에서 유럽연합(EU) 헌법 찬반투표가 한창이던 지난 2005년 5월의 일이다. 프랑스의 모든 정당을 찬성과 반대로 나눈 유럽헌법에 대해 시민들도 자신의 논리를 알리는데 분주했으며 그 공간적 배경은 물론 인터넷이었다.
그리고 누리꾼들은 열린 대화 공간인 <아고라복스>로 몰려들었다. "매우 프랑스적 현상이라 할 수 있는 블로그의 폭발을 기반으로 전통 언론에 반기를 든 누리꾼들이 인터넷에 집결한 것"이라고 르벨리는 말했다. <아고라복스>가 짧은 시간 안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누리꾼들은 자연스럽게 시민기자로 둔갑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블로그 문화가 폭발한 드문 나라 중에 하나다. 수다스러운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수다 하면 이탈리아인도 이에 못지않지만 프랑스인과 비교해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는데 표현력이 떨어진다. 프랑스인들은 불평불만주의자인 동시에 자기중심적이다. 자기가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프랑스인의 성향이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시민기자들의 기사는 6~7명의 <아고라복스> 내부 위원을 비롯해 30여 명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기사로 태어난다. 자원봉사자인 외부 위원들이 기사에 찬반 여부를 밝히고 찬성 의견이 많은 기사는 내부위원 즉 상근기자들이 명예훼손을 비롯한 법적 문제가 없는 지 확인한 다음 정식 기사로 채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법적으로 문제가 된 기사는 단 한 건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시민기자가 환경법을 위반한 기업을 고발한 사건이었고 '당연히' 불쾌했던 해당 기업은 <아고라복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아고라복스>가 승소했다.
지난 2월까지도 시민기자들은 매달 600여건의 기사를 송고했으며 이 중 70%가 정식 기사로 채택된 반면 30%는 버려졌다. 그러나 지난 6일 끝난 대선 바람을 타고 하루 100여 건의 기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민감한 시기임을 감안해 기사를 채택하는 기준도 엄격해졌다. 정치 성향이 분명한 기사 즉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기사나 선동적인 기사들을 지양하는 것. 그 결과 50%의 기사만이 정식 기사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아고라복스>는 특별한 정치적 경향이 없다고 한다. 좌, 우파뿐만 아니라 극좌, 극우파까지 포용한다. 이를테면 바이루를 옹호하는 기사와 반대 입장의 기사를 동시에 게재하는 방법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특정 후보의 편에 선 기사 중에도 근거가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으면 기사로 채택됐다. 해당 후보 진영의 인물이 쓴 기사라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모두에게 표현의 권리를 주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현재 1만여 명의 시민기자가 활동하고 있는 <아고라복스>가 처음 문을 연 2005년에는 30~40여 블로거가 집중적으로 기사를 썼다. 재능 있고 필력이 우수한 블로거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한 것이 유효했다. 블로그를 통해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유럽헌법 반대 운동을 펼쳐 일약 스타가 된 마르세유 마르셀 파뇰 고등학교 교사 에티엔 슈아르가 대표적이다. 슈아르는 프랑스로 하여금 1인 미디어 블로그의 영향력을 일깨운 인물로 지금까지 규칙적으로 <아고라복스>에 기사를 쓰고 있다.
대선 물결을 타고 최근까지 2주 간격으로 1500여 시민기자가 등록된 가운데 대선에 출마한 인물이 <아고라복스>를 전진기지로 활용한 예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특정 정당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바 있는 라시드 네카즈는 <아고라복스>의 시민기자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혀왔다. 그러나 대선 출마에 필수조건인 선출직 공무원 500인의 지지서명을 모으지 못한 네카즈는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밖에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 기사를 쓰는 프랑스 누리꾼들이 동시에 <아고라복스>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상도 눈여겨 볼 일이다. 실업자로부터 학생, 의사, 기업 대표, 정년 퇴직자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아고라복스>의 시민기자는 현재 여성보다 남성이 월등하며 연령대로 보면 18~35세 사이의 청년층이 활발하게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