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레이스 관전 포인트 (하)

등록 2007.06.25 11:13수정 2007.06.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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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머지 후보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쟁쟁한 분들을 나머지로 분류해서 해당하시는 분들께는 송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등이나 삼등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이등이나 삼등이 대통령으로 뽑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등, 삼등 얘기가 나온 김에 잠깐 여담을 조금 하고 넘어가자. 시장에서 이등이나 삼등 브랜드가 일등 브랜드를 제치고 올라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때문에, 어떤 브랜드는 아예 일등 되기를 포기하고(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시기에 있어서는) 이등전략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다. 이등자리만 확고하게 유지하면 일등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충분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고, 거기에 만족하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하겠다.

정치계에 있어서도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자신은 후보로 나서지 않고, 될 성 싶은 사람을 후보로 밀면서 자신은 확고하게 2인자의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이는 시대정신 또는 패러다임이 자신과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고, 어찌 보면 나름대로 꽤나 현명한(실속 있는) 처신이 되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후보들의 입장에서 관전 포인트를 살펴보자. 그들은 이미 주도권을 빼앗겼고, 지지도에 있어서도 일등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의 수준에 불과하다. 만약 그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하나로(한 사람으로) 모으면 일등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그룹 내부의 경쟁에서만 일등으로 올라서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안이하게 보고 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그렇게 산술적으로만 된다면야 오죽 좋겠는가? 뭐, 그 정도로 순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만약’이라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머지 후보들의 입장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경제문제가 주요 패러다임으로 고정되는 한, 나머지 후보들 중 그 누구도 지금의 일등을 밀어내고 그 자리로 올라가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나머지 후보들은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어찌 보면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일종의 시대정신으로서 누군가가 바꿀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는 그러하겠지만, 대선 같은 커다란 이슈의 시기에는 잠시나마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이슈화되는 주제들이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이는 각 후보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주제들을 이슈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연히 각 후보는 자신에게 불리한 주제는 외면하려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주제는 크게 부각시켜 이슈화하려고 시도한다. 그런 와중에 어떤 주제가 사회적 주요 이슈로 등장하게 되고, 사람들이 이를 지속적인 관심사항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것이 곧 그때의 패러다임이 되는 것이다. 단기간에도 이렇듯 주요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정치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일등 외의 후보가 판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즉, 국민들 머리 속에 들어있는 주요 관심사를 일정기간이나마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돌려야 한다. 북핵과 한반도 평화문제이든, 국민복지 문제이든, 정치지도자로서의 도덕성 문제이든, 뭐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슈화된 패러다임의 기준으로 자신이 최고의 적임자임을 집중 부각시켜 국민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켜야 한다.


시대정신(또는 패러다임)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그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일종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그러한 역사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시대정신을 바꾸거나 통제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특정 시기에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로서 표출되는 것이다.

현대의 미디어(방송, 신문, 인터넷 등을 포괄하는)는 때에 따라서 그러한 시대정신까지도 일정부분 조작할 수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그 시대에 요구되는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적어도 국민들 머리 속에는 잠시 바뀐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후보 중 누군가가 주요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고 그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한, 판세의 역전은 어려울 것이다. 그땐 그냥 일등 후보가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일등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실수의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일등을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사안으로 일등을 공략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일등의 허점을 노려 그의 실수를 유발하려는 것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일등 외의 나머지 후보들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경제문제 패러다임을 다른 분야로 바꾸려고 애쓸 것이다. 그와 더불어 현재의 일등에게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입히려고 시도할 것이다. 자신이 최고랄 수 있는 분야로 패러다임의 방향을 전환하느냐, 아니면 일등의 최대단점을 물고 늘어져 그를 추락시키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면서 관전 포인트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정치판이라는 곳이 워낙 지저분한 곳이라 국민들의 눈에는 짜증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렇듯 복잡 미묘하게 돌아가는 선거판의 난타전을 분석적인 시각으로 관전하다 보면, 나름대로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우리 사회에 올바른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부터는 정치선거가 재미있는 축제의 장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이 정치판과 정치인을 짜증으로 바라보게 하지 말고, 재미를 느끼면서 관전할 수 있게, 더 나아가 참여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작금의 역사가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또 하나의 시대정신인지도 모르겠다.
#대선 #패러다임 #시대정신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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