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에서 쫓겨나 운동장 한쪽에 치워져 있는 녹슨 구령대의 모습.서부원
그래도 남도 땅 벌교라면 한때 사람과 돈으로 흥청거렸던, 주변의 순천에 버금가는 도회지였습니다. 그때의 북적였던 사람과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이제는 초등학교 하나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퇴락해가는 고장이 되었습니다. 이는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주인이 떠난 빈 집이 얼마 못 가 허물어지듯 그 무슨 이유에서건 사람이 떠나버린 고장은 특유의 지방색을 잃고 끝내 사라지고 맙니다. 일단 그렇게 되면 파편화된 도시적 생활양식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건실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겁니다.
인구가 격감하고 그로 인해 줄줄이 학교가 문을 닫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폐교의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 리모델링을 통해 청소년 수련시설이나 특산물 전시관을 꾸미기도 하고, 고장이 배출한 유명인사의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경제적인 가치 창출에만 매달릴 뿐, 정작 '블랙홀' 도시에 맞서 '사람 사는' 고장으로 남기려는 본질적인 노력은 이미 접은 듯 보입니다. 모텔과 같은 숙박 시설과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도로변마다 진한 갈색의 관광지 표지판 또한 적지 않지만, 마을을 지속시킬 수 있는 핵심 공간인 학교나 병원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교문을 나서며 잡풀로 뒤덮인 운동장과 성한 유리창 하나 없는 흉물스러운 건물을 먼발치로 다시 힐끗 보았습니다. FTA다 뭐다 해서 더할 수 없이 심란해진 우리 농촌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졌습니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가득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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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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