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자랑스러워 평교사를 고집합니다"

S교장 선생님께

등록 2007.06.24 12:48수정 2007.06.2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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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교장 선생님께

엊저녁, 그 동안 밀쳐두었던 사진을 정리하는데, 예전에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교직원 단체 사진 한 장, 빛바랜 그 사진 속에는 햇병아리 교사였던 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벌써 25년이 후딱 지난 얘깁니다. 교사로 낯설고 물 설은 거제도에서 첫 부임했던 날 찍었던 사진입니다. 기억하실 테죠. 교육대학을 졸업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아이들 앞에 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할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고, 올망졸망한 아이들 눈빛을 선뜻 대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숫제 똥오줌을 못 가리는데도 선배 선생님들의 지청구는 서릿발 같았고, 교장 선생님의 바람은 부담스러울 만큼 많았습니다. 갓 부임한 저희 동기 넷을 너무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순간들이 죄다 그려집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교사로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게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납니다. 세월이 약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넉살좋게 어려움을 챙길 만큼 여유를 가졌습니다. 그 시절 교장선생님께서는 읍내 출장 가실 때마다

'어이 박 선생',
'여보게 박 선생'

하시며 제 교실로 오셔서 하루 아이들과 해야 할 일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꼬집어 주셨지요. 그때는 그러한 말씀들이 곤혹스럽게 들렸습니다. 제 그릇을 잘못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후배 교사를 위한 당신의 무한한 베풂이었습니다. 한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새삼스레 후회 남을 만큼 당신의 인자한 모습이 선연하게 다가옵니다. 하나, 그때는 그러한 일들은 너무나 부담스럽고 당혹했습니다. 고역이었지요. 지내놓고 보니 미안해서 피식 쓴웃음이 납니다.


S교장 선생님!

달포 전에 통영에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정년퇴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초야에 묻혀 당신의 노년을 정리하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물가에 앉혀놓은 철부지 아이 대하듯 그저 안타까워서 마음 놓지 못했던 햇병아리 교사도 이제는 어엿한 중견교사가 되어 당신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제는 철(?)이 들었는지 따끔하게 다그쳤던 당신의 지청구가 그립습니다.


지난해 추석 즈음 전화 주셨죠.

“선생 노릇 잘하고 있느냐?”고 닦달까지 하시면서 아이들, 제 몸같이 아끼고 사랑하라고 다짐을 받으셨죠. 아이들, 인정하고, 배려하며, 똑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그릇되게 일깨우라고 다독여 주셨죠. 애쓰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염려덕분에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선생이 되어 당신처럼 좋은 향기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S교장 선생님!

외람되지만 저도 이제는 세상물정을 알만한, 제 얼굴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됐습니다. 물론 교장선생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중년의 나잇살을 가지고 보니, 주변의 조그만 일에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만큼 주의주장이 강하다는 얘기도 되겠네요. 가정을 꾸리고, 친구관계나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교사로서 자기 정체감을 갖는 일도 그러합니다.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 물이 너무 맑으면, 심지가 너무 굳으면 불을 지피지 못한다고 말씀 하셨죠. 정말 혜안을 가지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소신을 저버리지 않고 교직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는 지금 평교삽니다. 더러 동기들 장학사 되고, 교감한다는 데 전 아직껏 아이들이 좋아서, 스스로 교사임을 자랑스러워서 평교사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니까 크게 염려하지 마세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이오덕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으면 선생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감합니다. 그 분의 삶을 통해서 보았듯이 아이들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만이 교사를 교사답게 이끌어줍니다. 마음 없는 직장 동료들이 푸념 삼아 자기 빈한한 처지를 팔리는 때가 있습니다. 나이 들어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부끄럽다고 합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다. 초발심(初發心)을 잃고, 하심(下心)하겠다는 자기 정체감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를 만나면 그러시겠죠. 똥고집을 꺾지 않는다고. 남들처럼 편하게 살지 않는다고 다그치시겠지요. 저도 압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손금 닳아버리면 장학사 되고, 교감 교장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세찬 눈바람을 능히 이겨낸 소나무가 그 푸름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결단코 그런 편에 서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평생을 평교사로서 살아갈 겁니다.

S교장 선생님!

이제 교단에서 물러나 학교 현장을 지켜보니 어떠합니까. 정말 지금의 학교가 아름다워 보입니까. 정녕 지금의 학교가 그렇게도 당신이 고집하셨던 모습입니까. 정말 아이들이 오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 다시 오고 싶은 학교로 살아있습니까. 날이면 날마다 비 걸레 들고 몸소 실천하며 '사제동행'을 강조하신 교장선생님의 강건하신 소신과 믿음이 아직도 유효합니까.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통분할 일입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교사단체에 가입하여 간부로서 활동해 오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 교육현실은 여전히 일개 교사의 힘으로는 어느 것 하나도 바꿔내지 못합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만 계속되고 잇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도맡아 가르친 아이들이 많을 겁니다, 제자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해마다 단 한 명의 제자만이라도 올바르게 키워 놓았던들 이 나라꼴이 이렇게 허물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제가 가르쳤던 제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다시 교장 선생님의 사랑을 물씬 받았던 햇병아리 교사였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마흔 중반인 제가 그 속에 기웃거립니다. 그렇지만 고집스럽게도 교장선생님이 못마땅해 하셨던 똥고집이자 제 교육소신을 꺾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고집스럽죠? 하지만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너그럽게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단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쥐꼬리 같은 박봉에도 선뜻 막걸리 잔치를 베풀어주셨던 교장선생님의 소탈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겨를을 내어 전화 드리겠습니다.

'빠른 게 느린 것이고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는 교장 선생님의 일념(一念)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해묵은 사진 한 장에다 장맛비 들이치는 창밖 애상을 그려봤습니다. 뵙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웹진 에세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웹진 에세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육 #평교사 #교장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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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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