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태양 아래 춤판

[싱가포르 문화기행 34] 빈탄 민속춤 공연

등록 2007.06.23 11:48수정 2007.06.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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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열대의 복사열이 피어오르는 흙길로 접어들었다. 빈탄 섬의 이 투어가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가이드를 따라 나섰기에, 나는 이 투어 미니버스가 가는대로 몸을 맡겼다. 이미 따라나선 길이니, 어떤 여정이 눈앞에 남아있는지는 궁금한 채로 놔두기로 했다.

폰독 타리에코위사타(Pondok Tariekowisata) 공연장. 빈탄의 민속춤을 공연한다.
폰독 타리에코위사타(Pondok Tariekowisata) 공연장. 빈탄의 민속춤을 공연한다.노 시경

차 밖으로 나오니 태양이 어깨를 짓누를 정도로 내려쬔다. 가이드 아주머니를 따라가다 보니, 작렬하는 태양 아래의 벌판에 인도네시아 전통가옥이 한 채 서 있다. 이 전통가옥은 일반 가정집이라기보다는 내부가 시원스레 뚫린 공연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폰독 타리에코위사타(Pondok Tariekowisata)라는 인도네시아 전통무용 공연장이다.


빈탄의 무용수. 대중적으로 변한 인도네시아의 전통춤을 공연한다.
빈탄의 무용수. 대중적으로 변한 인도네시아의 전통춤을 공연한다.노 시경

내가 묵고 있던 리조트 직원은 이 투어에 점심식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었다. 그래서 리조트에서 나오면서 조금 비싼 빵을 급하게 사서 여정에 올랐는데, 이 공연장 좌석에 여행자들을 위한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먼저 포장된 물병의 껍질을 뜯어내고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아내는 이 볶음밥이 썩 내키지 않아 먹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밥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우리와 같이 여행에 나선 프랑스 부부는 내가 가진 카메라와 동일 기종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카메라를 바꿔 가져가지 말자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의 국적을 확인하고 여정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프랑스 아저씨는 궁금한 게 참 많은 아저씨다.

“프랑스에서 싱가포르까지는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한국에서 싱가포르까지는 몇 시간 걸리지요?”

“6시간 걸립니다.”

“한국인들의 여름휴가는 며칠 정도 되지요?”


여름휴가를 길게 즐기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다운 질문이다. 내가 한국 직장인의 여름휴가가 대개 4일이라고 대답해 줬더니 그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는 한국의 휴가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 조금은 무안한 생각이 들어, 한 달에 한번 연차나 월차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와 함께 한국, 프랑스의 월 근무시간, 파업, 프랑스에서의 여행 경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나는 그의 관심사가 참으로 프랑스인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2명의 여자 무용수가 무대에 올라왔다. 빨간색과 푸른색의 전통 비단옷을 입은 그들의 복장은 깔끔했다. 맨발의 이 무용수들은 젊은 무용수들은 아니다. 이 작고 더운 섬에 젊은 무용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동네 인근에 사는 아주머니들인 것 같았다. 나는 이 아주머니들이 밭을 매다가 헐레벌떡 뛰어 왔을 것이라며 아내와 한참을 웃었다.


이 무용수들은 간단한 발 스텝에 손을 위아래, 옆으로 터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동작의 전통무용은 종교적 의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인도네시아 무용의 이 동작들은 8세기~13세기에 번성했던 자바의 힌두교 문화 시대에 형성된 기본적인 몸동작들이다.

인도네시아의 전통무용은 많은 수의 섬과 종족만큼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고,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용은 현재에도 번성하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빈탄 섬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무용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용은 마술 같은 신비한 분위기 속에 오락적인 요소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왕실과 중류층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용은 서민들을 통해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발전되었고, 점점 대중적인 춤이 되었다. 인도네시아 전통무용이 사원의 제사 때에 행해지던 성스러운 것에서 보고 즐기는 오락적인 춤으로 변한 것이다.

빈탄의 무용수와 춤을 즐기는 프랑스 소녀. 이들의 표정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빈탄의 무용수와 춤을 즐기는 프랑스 소녀. 이들의 표정이 참으로 대조적이다.노 시경

두 여인네는 자기들끼리 춤을 추다가 같이 춤을 출 사람은 나와서 추라고 손짓을 한다. 프랑스인 가족의 딸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 녀석의 발 스텝은 잘 맞지 않지만 팔 동작은 인도네시아 여인네들을 똑같이 흉내 내고 있었다. 이 아이의 조용한 엄마는 딸아이의 춤을 보면서 연신 흐뭇한 웃음을 보내고 있다.

나는 그 프랑스 작은 숙녀가 귀엽기도 했지만, 이 숙녀와 인도네시아 여인들의 너무나 다른 체형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직 어린 애가 인도네시아 여인네들과 키도 비슷한 데다 갸름하고 하얀 얼굴이 너무나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간소한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 관객 7명에 무용수 2명, 그리고 가이드 1명. 얼굴에 웃음 없이 사무적으로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 비해 어린 프랑스 소녀만이 웃으며 춤을 즐기고 있다. 빈탄의 무용수들이 어떤 인생의 질곡을 가졌기에 얼굴이 저리 무표정할지 모르지만, 그 얼굴에 조금만 웃음을 띤다면 그들의 인생도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곳과 같은 공연장의 민속춤에는 흥을 돋우거나 여행자들을 웃기는 동작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빈탄의 이 공연장에는 그런 노력이 전혀 없다. 그만큼 이 빈탄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필사적으로 덤비는 자본주의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탄의 민속춤은 과거의 모습에서 전혀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나는 빈탄의 한적한 한 마을에 들어와 이 곳 아낙네들의 삶이 깃든 춤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6년 8월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여행기는 2006년 8월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빈탄 #민속춤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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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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