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의 안쪽 건물입구김성호
재판장이 직접 증인을 신문하다
게시판을 보니 2호 법정에서만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으나 아직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10분 뒤 열린다고 해서 사진기를 맡기고 재판정의 방청석으로 미리 들어갔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통역하는 라디오와 이어폰 중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영어통역기를 선택했다.
앞쪽에는 유리로 가린 재판정이 있었고, 통로를 사이에 두고 뒤쪽에 역시 유리로 가린 방청석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재판정은 일반 재판정과 같았는데, 가운데 높은 곳에 판사석이 있었고 정면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검찰관이, 왼쪽에는 피고의 변호인단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에 피고인과 증인석이 있었다. 판사석 앞쪽으로는 법원직원들이 앉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정각 재판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직원들이 모두 일어섰고, 잠시 후 재판관 3명이 검은 법복을 입고 들어섰다. 재판관 3명이 모두 흑인이었다. 재판장은 안경을 낀 50대 중반의 남자이고, 좌우 배석판사는 모두 여자인데 한 명은 50대 후반의 안경을 낀 여성이었고, 다른 사람은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검찰관은 백인 남성이었고, 변호인단에는 프랑스 변호사와 흑인 변호사들이 같이 있었다. 재판관은 검은 가운에 빨간 머플러와 중앙에 흰 머플러를 입었고, 검찰과 변호인단, 그리고 직원들은 모두 검은 가운에 흰 머플러를 입고 있었다.
재판관이 앉자 바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증인신문 차례였다. 증인석에는 50대 중반의 흑인이 서 있었다. 증인은 르완다 병원의 원무행정 책임자인 것 같았다. 검찰은 당시 병원에 실려 왔던 희생자들의 치료과정과 진료 기록의 최종 서명자에 대해 추궁하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증인은 피고인이 아닌데도 매우 긴장한 듯 더듬거리고,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도 내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변호인의 경우는 프랑스 여자 변호사가 증인에게 짧게 묻고는 주로 듣고 있었다.
증인이 병원의 진료기록을 누가 작성했고, 최종적으로 서명했느냐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답답한 듯 재판장이 직접 증인을 대상으로 신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진료 기록을 만드느냐?"
"진료를 맡은 의사가 하게 되어 있다."
"그럼 병원의 진단 기록을 발급할 때는 누가 최종 서명을 하느냐?"
"병원의 최종 책임자가 한다."
이날 재판은 영어와 프랑스어, 키니아르완다어 등 3개 국어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검찰관이나 재판관, 증인이 각자 자국어로 말을 하면 3개 국어로 동시통역이 되고 있었다. 검찰관 뒤쪽에 프랑스어와 영어, 키니아르완다어를 통역하는 통역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관은 영어로 질문하고, 증인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변호인단도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재판장도 영어를 사용했는데, 재판관 모두가 귀에 통역기를 끼고 있었다.
증인도 통역기를 끼고 있었는데, 검찰의 영어 신문을 동시통역사가 프랑스어로 통역해주면 증인이 프랑스어로 답하고 다시 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하면 검찰이 다시 신문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통역을 거치다보니 재판진행은 매우 더디었다.
재판관석 뒤에는 국제사법기구의 상징인 정의의 저울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재판과정은 건물 1층의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공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