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조차 맘대로 할 수 없게 된 아들 병순 씨와 그 옆에서 애만 태우고 있는 어머니 양각례씨.이돈삼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 '엄마'하고 부르며 달려들어 안기고…."
전남 순천시 조례동에 사는 고영환(61)·양각례(61)씨 부부는 매일 밤 이 같은 꿈을 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게 자식이라는데, 고씨 부부 곁엔 아들 병순씨가 13년째 누워만 있다. 기적 같은 소생을 바라는 부모의 애타는 눈빛을 외면한 채….
지난 1994년 7월 7일. '7'이라는 숫자가 겹친 날. 하지만 고씨 가족에게는, 논과 밭을 일구며 소박하게 살던 그 가정에 커다란 불행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 병순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자동차와 충돌해 의식을 잃었다. 두 번에 걸쳐 대수술을 했지만 허사였다. 부모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린 채 아들은 병상에 누워야만 했다.
2년 4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효험이 있다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갔지만 헛걸음이었다. 하늘만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열여덟 여드름투성이 병순이도 벌써 서른이 넘었다. 그의 곁에는 녹이 슬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휠체어가 그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병순씨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처지다. 목과 팔, 다리가 모두 경직돼 장정이 달려들어 거들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아버지 고씨가 그 옆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밤에 아파트 경비라도 해서 생활비를 보태고 싶지만 아내만 혼자 두고 외출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럽다. 그 사이 치료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병순씨의 큰 누나와 셋째 누나가 집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딱한 처지에 놓인 막내 동생을 곁에서 간호해야겠다는 누나들의 등살에 매형들도 모두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아들의 교통사고 보상비로 마련한 낡은 아파트와 산골에 있는 밭뙈기 탓에 정부에서 주는 복지혜택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나마 약값 3~4만원씩 받아온 것도 다음달이면 받지 못하게 된다.